▲지난 2014년 12월 19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가운데)이 서울 종로구 헌밥재판소에서 진행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에서 판결문을 읽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헌법재판소가 2013년 정부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인용함으로써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것은 2014년 12월 19일이었다. 헌재는 재판관 8(인용) : 1(기각)의 의견으로, 피청구인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그 소속 국회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결정을 선고했다.
그로써, 민주노동당에 이어 13석의 의석을 확보하며 국회에 진출한 통합진보당은 불운하게도 위헌 정당해산제도에 따라 해산되는 첫 정당이 됐고 소속 의원 5인(분당의 결과)은 의원직을 잃었다. 열 달 전인 2월 17일에는 수원지방법원이 정당해산심판 청구 원인을 제공한 이석기 등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이석기의 내란음모·내란 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대부분 유죄로 인정해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하고 나머지 피고인들에게도 징역 4~7년을 선고했다. 이듬해 8월 서울고법의 항소심은 '음모' 혐의는 증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선동' 혐의만 인정,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으로 감형했다. 이는 2015년 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통합진보당 해산 4년 후, 나는 통합진보당 사태를 돌아보는 기사를 썼다. 헌재의 결정을 '자유민주주의 수호'라고 본 <중앙일보>와 '민주주의 저격'이라고 판단한 <한겨레>의 사설을 각각 소개했다(관련 기사 :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그 이후 대한민국은 튼튼해졌습니까).
<한겨레>는 생각과 주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소수자를 배척하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의 징표인데, 이 결정은 진보 소수 세력에 대한 축출 선언으로 '역사의 시계'를 되돌린 것으로 규정했다. 정당 해산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헌재는 당 강령 등에선 그런 위험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진정한 목적'이나 '숨은 목적'을 추정해보면 그런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해산을 결정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는 헌재가 자신을 '자해'하면서 한국 '민주주의를 저격'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보수와 진보를 떠나 민주주의를 삶과 사회의 원리로 이해하는 나도 여느 시민의 정서와 다르지 않게 이 결정을 이해했다. 헌재의 결정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휘둘렀지 않나 하는 안타까움과 함께, 주권자의 지지를 받아 등원한 정당과 그 소속 국회의원의 존재를 부정해 버린 데 대해선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나는 기사를 맺으면서 '민주적 기본 질서'를 보호하고, "실질적 해악을 끼치는 구체적 위험성을 제거"하고자 결정한 정당 해산과 의원직 상실이라는 극약 처방을 통해 이 나라 민주주의는 얼마나 튼튼하고 안전해졌나를 자문했었다.
내란 선동 사건 이후 3천 일, 나라는 얼마나 안전해졌나
3000여 일을 감옥에서 보내고 있는 이석기의 가족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긴 마찬가지였다. 2002년 그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자 국방부 합참정보본부 부이사관(3급)으로 재직하던 넷째 누나 경선씨는 기무사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아야 했다. 일주일 동안 조사를 받은 뒤 지병을 얻은 그는 부당징계를 받고 이와 싸워 승소했지만, 다발성경화증으로 22년간 봉직해 온 국방부로 돌아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2013년 그가 구속되자, 구명운동에 나선 셋째 누나 경진씨는 촛불혁명으로 집권한 문재인 정부의 전향적 조치를 기대했다. 그러나 2017년 7월 8.15 특사를 앞두고 시작한 청와대 앞 1인 시위는 1000일이 넘도록 소득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네 차례에 걸쳐 시행한 특별사면에 동생의 이름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희귀성 갑상선암의 발병으로 경진씨는 성대까지 제거했지만,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올 3월에 눈을 감았다. 임종 전에 누나를 보려고 신청한 이석기의 일반 귀휴는 거부됐고, 누이의 부음에 '2박 3일 귀휴'를 받아 7년 만에 외출을 나온 그는 빈소를 지키다가 누이를 배웅해야 했다. 누이를 묻고 그는 대전교도소로 돌아갔지만, 장례일까지 청와대 앞 주차장에는 주인 잃은 누이의 승용차가 외로이 서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