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저 기시감이길 바란다. 하지만 초기 자본주의의 폐해, 스핀햄랜드법, 물신화된 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이어지는 영국에서의 궤적과 오늘날 한국에서의 자유주의의 역습의 배경 사이에는 큰 유사성이 존재해 보인다. 저성장, 청년실업, 재벌경제와 부의 집중, 비정규직 문제, 수많은 고공시위와 자살이 대변하는 프리카리아트 문제와 같은 한국 자본주의의 모순들이 2016년 촛불시위에 밑거름이 됐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 반도체 기술독립, 부동산정책, 청년일자리정책 등에서 보듯이 문재인 정부는 막연한 온정주의, 시대착오적 국가주도주의로 민중의 고통에 화답했다. 정책은 혼란스럽고 사람들이 느끼는 당장의 고통은 '성장통'으로 치부됐다. 총론은 무성한데 세밀한 각론은 본 적이 없다. 재정 지원은 늘어났지만 제도개혁은 없었다.
정부는 온갖 자화자찬을 통해 권력의 진정성(sincerity)을 지지자들에게 각인했는지 몰라도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따듯한 척하는 국가의 온정 따위가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 정도는 이제 잘 알고 있다. 사실 내용 없는 온정주의는 '민생 제일'이라는 구호를 쓰면서도 민생은 오히려 도외시하고 노동개혁 등을 추진한 박근혜 정부부터 이미 시작됐다.
이제 새로운 자유주의가 사람들의 텅 빈 가슴을 파고 들고 있다. 심지어 한국의 자유주의도 물신화된 모습이다. 보수세력들은 재산권을 포함한 사적 자유, 권력의 제한, 시장의 자유 등 고전적 의미의 자유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자유를 불변 또는 불가침의 법칙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유는 우리가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기 전에(!)...일상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윤석열). 부모와 '빽'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실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것이 진정한 자유다(이준석). 자유시장의 보편성이나 탈규제의 당위성은 "대학 첫 학기에 배우는 경제원론"에도 다 나오는 이야기이며 "인류 역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다(윤희숙).
한국의 보수는 개발독재에 대한 향수나 지역감정과 같은 퇴행적 언어를 더 이상 구사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윤석열)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가치로 자유를 제시한다. 이 법칙에 대항하거나 수정을 가하는 것은 "탈레반"(윤희숙)이며 "국민 약탈"(윤석열)이다. 자유는 사람과 자연, 시민과 공동체라는 관계 속에서 체험되고 쟁취되며 나아가 조정되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획일적인 철의 법칙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결사권과 권력 분립을 저해하는 반자유주의적 입법활동을 무리하게 추진해왔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 목도하고 있는 자유주의의 역습이 문재인 정부의 그러한 행보에 대한 단순한 반발이기를 바란다. 그러나 폴라니의 통찰에서처럼 한국 역시 지난 20여 년의 역사의 궤적으로 인해 새로운 자유주의가 물신화되고 확고한 헤게모니적 지위를 확보하는 과정에 있다면 이것보다 무서운 일은 없다.
한국 역시 싱가포르처럼 "사형 제도를 갖춘 디즈니랜드"로 나아갈지 모를 일이다. 디즈니랜드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놀이기구에 오르는 소비자들은 있겠지만 현장 속에서, 공동체 속에서 고단한 삶의 해법을 함께 모색해 나가는 집합적 의미의 생산자들은 없다. 자유주의가 철의 법칙이 돼 우리를 지배하는 순간 우리는 자유민이 아니다. 얄팍한 지식에 근거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어느 서생의 기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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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22번 언급한 그 단어... 자유주의의 역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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