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찬 회동을 위해 7일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 들어서고 있다.
국회사진취재단
미군과 소련군의 한반도 분할 점령을 해방으로 보는 그릇된 시각을 만들어낸 것은 종전 당시 미국과 소련이 이타적 국가라는 착각, 이들이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점령한 게 불가피했다는 착각, 이들의 점령이 선의의 결과였다는 남쪽의 친미 정치인들-북쪽의 친소 정치인들이 갖고 있던 착각의 결과였다. 미국과 소련은 이미 2차 세계대전 중에 이뤄진 몇 차례의 회담에서 한반도에 대한 즉각적인 독립을 인정하지 않기로 의견을 모으는 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한 국가들이다.
잘 알려진 대로 1943년의 카이로회담에서 선언한 "적당한 시기에(In Due Course)" 독립시키겠다는 약속 자체가 즉각적인 독립의 불가함을 선언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능한 한 빠른 시일에" 혹은 "즉시" 독립을 시킨다는 착한 뜻으로 오해한 것이 당시 한국의 정치인들이었다. 좌와 우의 구분이 없었다. 사실에 기반한 자기 확신이 아니라 희망에 매달린 확증편향이었다.
미국과 소련에 의한 남과 북 분할 점령 의지를 명확하게 선언했던 1945년 2월 얄타회담 이전에도 분할 점령은 이미 정해진 방향이었다. 전쟁 중에 전후 패전국 지배 영토에 대한 통치 방향을 준비하기 위해 미국에서 만든 다양한 비밀 정책 보고서들에는 분할 점령의 의도가 이미 명료히 드러나 있었다. 그 한 예가 미국의 대외관계심의위(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수행한 한국 정책보고서 'The Problem of Constituting an Independent Political Regime in Korea(한국의 독립 정치 체제 구축 문제)'이다.
1944년 5월 22일 자로 발표한 이 보고서는 미국 등 연합국이 종전 1년 3개월 전인 당시 일본의 조기 항복 가능성을 인지하고,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고서에는 명확하게 "한국에 어떤 형태의 독립정부도 세워져서는 안 되며, 한반도는 전후 일본 관리의 목적을 위해 군사지대화시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점령군의 구성에 관해서 이 보고서는 한 나라의 단독 점령은 연합국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불가능하고, 연합국 군대의 공동 지배는 연합국 간의 협조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려움이 예상되고,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직한 것은 두 나라에 의한 분할 점령이라는 것과 소련과의 분할 점령이 미국의 국익이나 조선인들의 저항을 최소화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는 정책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은 이미 점령을 준비 중이었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수년간 자료를 찾아 연구했던 필자 경험에 의하면, 이 보고서 이외에도 미국은 종전 훨씬 이전부터 점령 예정지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한국도 당연히 대상 지역 중 하나였다. 대표적 문서로써 카이로회담 전인 1943년 6월 전쟁성 일반참모부 군정보처에서 'Survey of Korea'라는 한국 통치 준비자료를 만들었고, 종전 직전인 1945년 4월에는 한국에 관한 육군과 해군 공동종합보고서 '한반도의 군사적, 전술적 자료를 담은 정보조사서(JANIS 75)'를 완성해 점령 준비를 체계적으로 한 바 있었다.
당시 한국에 들어온 미군 장교와 군정 관계자들은 이들 문서로 군정 훈련을 받은 후에 입국을 했다. 이들 문서에서는 공통적으로 한국인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 현실은 안정적이어서 충분히 자치능력이 있다는 점과 이들이 자치와 독립을 간절히 원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의 통치자들이나 외교전문가 집단은 즉각적인 자치나 독립의 부여는 미국의 이익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36년간 제국주의 지배로 신음한 한국인들의 기대나 희망보다는 자국 이익을 위해 군사적 점령을 선택한 미국, 그 이익을 힘으로 관철하려 들어온 미군이 점령군이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군정은 점령군이 펴는 통치 형태이지 해방군이 주는 시혜의 결과일 수는 없다. 두 번째 한국 주재 미군정 장관이던 러치가 당시 한국 언론인들과 한 기자회견에서, 민주적 의사결정을 요구하는 한국 기자에게 "세상에 민주적인 군정은 없다"고 대답한 것은 곱씹어볼 만하다.
군정에 민주주의를 기대하던 군정 당시의 한국 기자와, 점령군을 '해방군'이라고 부르고 싶어 하는 현 정치인들이 다르지 않다. 역사적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알고도 외면하고 싶은 심리가 동일한 것이다.
제대로 모르거나, 알고도 외면하고 싶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