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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만에 어머니가 해주신 '술 빵'을 먹었습니다

형, 동생 몰래 숨겨두고 먹었던 '술 빵'의 추억

등록 2021.06.30 08:57수정 2021.06.3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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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은 형 생일이었다. 다른 집 형제들이 으레 그렇듯이 어릴 때부터 우리 삼형제도 데면데면한 사이였다. 동생과는 사이가 좋았지만 형과는 그렇지 못했다. 한동안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생일이 되어도 잘 챙기지 못했다. 어머니가 며칠 전 전화를 하시더니 형이랑 토요일에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하셨다. 고심 끝에 형에게 줄 작은 선물도 마련했다.


지난번 어머니 생신 때 맛있게 먹었던 동네 식당에서 버섯 소불고기를 주문했다. 밥을 먹다 보니 자연스레 어린 시절 이야기가 화두가 되었다. 수십 번도 넘게 들었을 어머니의 신산스러운 회상은 기쁘기 보다는 춥고 서늘했다. 내 서늘한 정서의 뿌리다. 문득 어머니가 간식으로 만들어 주셨던 술 빵이 생각났다. 이전 기사(피순대국밥부터 캐비어까지... 어떤 음식에 진심인가요?)에도 어머니 술 빵 이야기를 잠깐 언급 했었다.

형도 잠시 기억을 더듬더니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술 빵이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 나도 그 술 빵 기억난다."
"형이랑 동생에게 술 빵 안 뺏기려고 꽁꽁 숨겨 놓고 몰래 먹었지."
"그랬었던가."


형도 당시의 기억이 나는지 피식 웃었다. 시골이라 마을엔 마트도 편의점도 없었다. 간이 점빵 두 개가 다였다. 아버지는 일곱살 때 지병으로 돌아가셨다. 시골에서 살았지만 갈아 먹을 논밭 한 평도 없었다. 어머니는 삼형제 끼니라도 거르지 않기 위해 철마다 동네 어르신들 논으로 밭으로 날품을 다니셨다.

용돈은 언감생신이었다. 어머니가 가끔 해 주시던 술 빵이나 옥수수, 고구마 등이 유일한 간식이었다. 술 빵을 형과 동생에게 빼앗길까 봐 며칠 동안 아껴두고 몰래 조금씩 뜯어 먹었다.


오늘따라 동생의 빈 자리가 크다. 밥을 다 먹을 때쯤 형에게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동생에게 처음 받는 생일 선물이라 형도 깜짝 놀란 눈치였지만 기분 좋게 받았다.

"야, 동생에게 생일 선물도 받고 기분 좋네." 
 
술빵 어머니가 삼십 년 만에 해주신 술 빵,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났다.
술빵어머니가 삼십 년 만에 해주신 술 빵,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났다. 김인철
 
일요일 아침에 어머니가 전화를 하셨다. 술 빵이 먹고 싶다는 내 이야기에 어제 마트에서 막걸리며 베이킹 소다 등 재료를 사셔서 오늘 아침에 만드셨단다. 어릴 때처럼 쇠로 된 채반에 밀가루 반죽을 통째로 찌지 않고 작게 소분해서 쪄 오셨다.


"하도 오랜만에 만들어서 제대로 맛이 날랑가 모르겠다."

어머니는 술 빵을 건네시며 들어가는 재료도 만드는 방법도 다 잊어버리셨다고 하셨다. 반가운 마음에 한 입 베어 먹었다. 어릴 적 먹던 그 술 빵 맛이 난다. 모양도 맛도 그대로였다. 거칠게 뜯어지던 껍질의 결도 그대로다.
 
술 빵 어렸을 땐 쇠로 된 채반에 밀가루 반죽을 통째로 넣고 찌면 반달처럼 부풀어 올랐다.
술 빵어렸을 땐 쇠로 된 채반에 밀가루 반죽을 통째로 넣고 찌면 반달처럼 부풀어 올랐다. 김인철
 
"와, 어렸을 때 먹던 그 맛이에요."
"아이고, 다행이다. 이제부턴 자주 해줄게. 맘껏 먹어."


숨 넘어가듯 세 개를 먹었다. 요즘 나오는 빵에 비하면 너무 달지도 않고 맛은 되려 밋밋하다. 길거리에서 파는 옥수수 빵과도 식감과 맛이 다르다. 떡처럼 쫄깃하지도 않고 카스텔라처럼 부드럽지도 않다. 막걸리 향이 코 끝을 스친다.
               
어릴 때처럼 꼭꼭 숨겨두고 먹을 필요는 없다. 마트, 편의점 등 주변에 먹을 것도 많고 빵도 예전처럼 즐겨 먹진 않는다. 그렇지만 오늘 어머니가 삼십년 만에 직접 만들어 주신 술 빵은 내게 더욱 특별하다.

추억과 함께 부풀어 오른 술 빵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가슴 한편이 서늘해진다.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먹을수 있는 날들이 많지 않아서 일 것이다. 연세에 비하면 아직 정정하시지만 마음이 불안하다.

나날이 연로해지시는 어머니를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 이제 술 빵은 그만 먹어도 되니 당신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인철 시민기자의 <네이버 블로그와 다음 브런치>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술빵 #막걸리 #어머니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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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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