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청궁 옥호루1895년 10월 8일, 왕후 민씨가 일본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장소인 건청궁 옥호루.
문화재청
일본이 공사관을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로 바꾼다. 목적은 즉자적인 테러다. 부임 37일째인 1895년 10월 8일 새벽 궁궐을 침범, 건청궁에서 왕비를 처참하게 살해한다. 여기에 우범선, 이두황 등 내부 협력자와 동조자가 우글거린다. 왕비의 죽음은 이를 목격한 외국인을 통해 알려진다. 그 중 한 사람이 세레딘-사바틴(A. I. Seredin-Sabatin)이다. 조선 조정을 장악한 일본은 친러·친미 관료를 내쫓고, 친일내각을 다시 들여앉힌다.
유약한 왕은 궁에 갇힌 포로 신세로, 자신이 독살 당할 거라는 의심으로 식음마저 전폐한다. 오로지 언더우드 등 외국인 선교사 부인들이 건네주는 음식으로 연명한다. 날달걀과 연유다. 미국 선교사들이 번갈아 불침번을 선다. 하루하루가 치욕스런 수인 아닌 수인의 나날이다. 왕비의 죽음과 단발령으로 의병이 일어나지만, 그저 수구세력의 반발에 불과하다. 이들 힘으론 일본 털끝도 건드리지 못한다.
아관파천(俄館播遷)
그해 11월 왕을 미국공사관으로 피신시켜 친일내각을 전복시키려던 춘생문 사건이 수포로 돌아간다. 러시아가 자국 공사관보호 명분으로, 인천항에 정박 중인 군함에서 수병 100명을 한양으로 진군시킨다.
왕이 러시아 황제에게 국서를 보내나, 그저 살려달라는 구차한 밀서에 불과하다. 베베르는 친러파 이범진을 준동시킨다. 도성은 의병진압 명분으로 경비가 소홀하다. 엄 상궁 도움을 받은 왕이 여인의 복식을 차려 입고 세자와 함께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다. 1896년 2월 11일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