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10월 월남 파병 출발 전 가족사진
최미향
- 보여주신 것을 보니 선생은 초등학교만도 무려 7개 학교를 전학 다니셨다. 교우 관계에서 상당히 힘들었을 것 같다.
"제가 태어난 곳은 대전이다. 군인이신 아버지를 따라 수시로 전학을 다녀야 했기 때문에 어디 한군데 진득하니 살아본 기억이 별로 없다. 세어보니 초등학교만 일곱 번을 전학했다. 때로는 같은 학교를 두 번 다니기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이사 다닌 것을 멈췄을 때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기숙사에 들어가고부터였다.
가만 보니 초등학교 6년 동안 무려 7개 학교를 전학 다녔다. 이것은 평균 1년도 같은 학교에 다니지 못한 결과다.
경기도 연천에 있는 은대초등학교, 여주시 대신면 대신초등학교, 다시 연천군에 있는 은대초등학교, 서울 은평초등학교, 대전에 있는 원정초등학교와 문화초등학교 그리고 태평초등학교다.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정도로 많은 학교를 다녔다.
이것은 우리 4형제가 비슷한 경우로 모두 오롯한 추억을 가지지 못한 슬픔이 있다. 그런데도 위로 형님과 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직업군인의 길을 걸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바로 위 형님은 1977년 공군부사관에 입대하여 2010년 11월 말까지 33년 8개월 간 공군 원사로 근무하다 전역했고, 둘째인 나는 1974년 공군항공과학고에 입학하여 2002년 공군에서 원사로 전역하기까지 28년 5개월간의 군 생활을 했다.
옛말에 '아들은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아버지가 월남전에 파병되었다면 나는 1991년 공군 56공수비행단 일원으로 걸프전에 참여했다. 베트남 파병 이후 근 20여 년 만의 해외파병이었다. 이런 것만 봐도 나는 어딜 내놔도 우리 아버지인 고 강종희 상사의 아들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웃음)."
- 걸프전에 참여했다면 당시의 얘기를 듣고 싶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기습 침공하여 걸프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공군은 제56공수비행단인 비마부대를 창설하여 아랍에미리트의 알아인 기지에 파견했다. 1991년 2월 19일부터 그해 4월 9일까지 다국적군으로서 인원 및 화물 공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쟁터로 떠나게 됐다. 떠나기 며칠 전, 부모님을 뵈러 본가에 들렀다.
자초지종 얘기를 들으신 어머니는 '하필 니가 가냐'며 펑펑 우셨고, 아버지는 '군인이 전쟁터 가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몸 건강히 잘 다녀오거라'라며 기꺼이 제 등을 두드려 주셨다. 제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형님은 '나도 갈 수 있다면 가겠다'고 해서 우리 가족들을 다시 놀라게 했다. 오죽했으면 제가 '장남은 좀 참으시라'며 말렸을까.
파병 후 나는 알아인기지에 주둔한 미군과 아랍에미레이트에 파병된 군인들에게 바쁜 일과를 틈타 태권도 시범단을 편성하여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귀국할 때까지 미군 태권도동호회 30여 명 장병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지도했다. 그것이 고국에 알려지면서 복귀 후 국위선양에 앞장선 공로로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표창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동시 수상을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