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노력자공산대학소련 모스크바에 문을 연 공산주의자 교육 기관이다. 1921년 4월 21일 코민테른이 설립했다. 모스크바공산대학, 극동공산대학으로도 불렸다. 1926년 설립된 국제레닌학교와 비슷한 기능을 수행했으나, 식민지 피지배국 운동가를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기관이라는 차별성을 가졌다. 한빈은 이 대학에서 조선 사회주의 운동을 이끌 지도자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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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러시아 혁명'을 경험한 한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동대학을 석 달 다녔다. 18세 때인 1920년, 그는 러시아소련공산청년동맹에 들어가 활동했다. 10대 때부터 한빈은 '조숙한 혁명가'였다.
1923년 8월 한빈은 모스크바에 있는 동방노력자공산대학(KYTB) 속성과에 입학해서 1924년 5월 졸업했다.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은 코민테른(Comintern)이 극동 러시아인과 아시아인을 공산주의 지도자로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다. 학비는 무료였고, 식사와 옷가지, 학용품까지 모두 제공했다.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은 강당, 병원, 구락부, 사무실과 함께 '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었다. 입학생이 러시아어를 읽을 수 있게 되면, 책을 지정해서 각자 연구하도록 했고, 책은 도서관을 통해 대출해서 볼 수 있었다.
권오직, 김단야, 김명시, 오기섭, 오성륜, 조봉암, 주덕해, 주세죽, 주영하처럼 유명한 조선 공산주의자가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서 공부하거나 일했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과 류샤오치(劉少奇)도 이 학교 출신이다.
한빈은 러시아에서 오래 생활했기 때문에, 러시아 말이 유창했다. 해방 후 북조선에 주둔한 소련군 사령관 슈티코프(Terenti Fomitch Stykov) 대장이 "한빈 동지의 러시아 말을 들으면, 타국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것 같은 친밀감을 느낀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동방노력자공산대학을 졸업하고 만주로 돌아온 한빈은, 1924년 12월 고려공산청년동맹 간도총국의 조직부 책임자가 되었다. 조직을 담당한 그는 고려공산청년동맹 간도총국을 만주총국으로 키웠다. 1925년 4월 한빈은 최창익과 함께, 중국 동북 지방 영고탑(寧古塔)에서 북만주청년동맹을 결성했다.
만주와 조선, 러시아를 넘나든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