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 현장 그곳에는 아직도 총탄 자국 등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박기철
세계적인 지식인 노암 촘스키(Noam Chomsky)는 과거 저서에서 미국과 관련된 학살을 '사악한 학살' '자비로운 학살' '건설적인 학살' 등으로 구분했다.
사악한 학살은 나치의 유대한 학살처럼 미국의 적대국이 저지른 학살이다. 이런 경우는 끈질기게 파헤쳐서 책임을 묻는다. 그리고 자비로운 학살은 미국의 동맹이나 종속국이 저지른 학살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슬쩍 눈을 감거나 약하고 애매하게 비판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건설적인 학살은 학살을 적극적으로 미화하거나 부정·은폐하는 것을 일컫는다. 미화의 대표적인 경우는 '인도적인 폭격(Bombing for Humanity)'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일본에 대한 핵폭탄 투하로 많은 민간인들이 사망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쟁을 빨리 끝내 더 많은 생명을 구했다는 주장이다.
미화가 아니라 학살을 부정하거나 은폐하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미군의 전쟁범죄를 들 수 있다. 한국 전쟁 때도 원주·대구·마산 등지에서 미군에 의한 민간인 희생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계속 부정해왔다. 그리고 그중 대표적인 사건이 노근리 민간인 학살이었다.
그러다 1994년 월간 <말>의 오연호 기자가 노근리 사건을 최초로 심층취재 보도했다. 5년여 뒤인 1999년, AP통신이 한국 전쟁 참전 미군과 피해자들의 증언과 관련 문서를 발굴해 특종 보도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피난민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령
한국 전쟁 초기에는 전선이 계속 아랫쪽, 즉 남쪽으로 밀렸다. 그래서 1950년 7월 23일, 충북 영동군 주곡리 일대 주민들에게는 소개령(분산 명령)이 내려진다. 타 지역 주민까지 합쳐 60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은 미군의 인솔에 따라 이동했다고 한다. 7월 26일 국도를 따라 이동하던 행렬은, 경부선 철길 위로 올라가 계속 남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이때 미군 부대가 민간인들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군이 사방이 탁 트인 철로 위로 인도한 터라 몸을 숨길 곳도 없었다. 일부 피난민들은 먼저 철길 옆 배수로로 피신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근처 쌍굴다리로 들어갔다.
미군은 기관총과 박격포를 동원해 굴다리 안에 들어간 사람들을 공격했다. 이 공격은 29일까지 나흘이나 이어졌다. 그리고 겨우 20여 명만이 살아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