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소유에 관한 심오한 질문으로, 남편을 개싸움으로 인도한 트럭의 현재 모습
노일영
멱살잡이 불러온 트럭 기증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 기증이었다. 연식이 오래됐다고는 하지만, 트럭을 기부하다니. 이 이사 이 양반에게 트럭이란 어떤 존재일까, 연구회 회원들 모두 소유와 존재에 관한 심오한 질문 앞으로 강제적으로 소환 당했다. 남편만 예외였다.
"이 이사님, 만수르 가문의 숨겨진 아들 아닐까? 눈도 부리부리하고 이국적으로 생기셨잖아."
하여튼 이 인간에게 진지함 따위를 기대하는 건 다 부질없는 짓이다. 이 이사는 협동조합이 설립되면 트럭의 소유권을 법적으로 조합으로 넘기겠다고 밝혔다. 도대체 이분의 의식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흐르고 흘러 트럭을 기증하는 이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을까?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도도한 듯하면서 동시에 구불텅구불텅한 의식의 흐름이었다.
기증된 트럭은 키가 꽂힌 채 마을회관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게 갈등의 발단이 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7시 45분에 마을회관 마당으로 출근하면, 작업반장은 늘 뒷짐을 지고 흰색 트럭을 그윽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협동조합의 공동 자산 1호로 등록될 그 트럭이 무척이나 대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 대견한 트럭 앞에서, 헐! 남편과 귀촌한 분이 멱살잡이까지 하며 싸웠다. 경솔의 아이콘에다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에 질투심이 강하고 체력과 의지력도 나약한 남편은 성질머리도 고약한 편이다. 어쨌든 그 귀촌인이 기증된 트럭을 개인적인 용도로 몇 번 이용했다. 그때마다 남편이 트럭을 사적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지적을 한 듯했다.
산수유 작업을 하루 쉬게 된 어느 날, 그 귀촌인이 산에서 그러모은 땔감을 문제의 그 트럭에다 싣고 오는 장면을 남편이 목격한 모양이었다. 마음의 수양이라고는 1도 안 되어 있는 남편이 먼저 상대의 멱살을 거머쥐고야 말았다.
이 인간은 나의 감시망이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이렇게 바로 들짐승이 돼버린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서 그 귀촌인의 옷깃을 덥석 움켜쥔 것이다. 이 천둥벌거숭이 같은 괴생명체를 통제하려면 당근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채찍만이 답이다.
트럭 앞에서 펼쳐진 멱살잡이는 참으로 볼 만한 구경거리를 제공했다. 이리 밀치고 저리 밀리며 밟는 두 사람의 스텝을 보며 배경 음악으로 탱고가 깔린다면, 완벽한 주성치식 코미디가 완성될 것 같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로 재미났다, 처음에는.
구경꾼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어차피 주먹다짐으로 번질 싸움이 아니란 걸. 얼마 전 윗동네에서 주먹질이 오가는 난투극이 벌어졌고, 농사일로는 만져 볼 수도 없는 거금이 합의금으로 지불된 사건이 있었다.
서로의 멱살을 힘차게 비틀고 있는 두 사람도 그 사건을 모를 리 없었다. 둘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 주먹이 나가는 순간 '게임비'가 얼마나 될지, 그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슬로우 슬로우, 퀵퀵, 슬로우 퀵퀵 슬로우.
화려한 발놀림을 보며 단어가 하나하나씩 떠오른다. 탱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피아졸라, 체 게바라, 마라도나, 이구아수 폭포, 해피투게더, 양조위와 장국영, 사랑하고 이별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아 슬프다, 또 뭐가 있더라, 하는 순간 둘은 반대 방향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이제 이 두 사람은 영화 <해피투게더>의 아휘와 보영처럼 다시는 만나지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