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골죽도의 언덕바지에 서있는 무종과 등대1907년 처음 세워진 등대와 안개가 낄때 종을 쳐서 항해하는 배에게 알렸다는 무종이 독특한 풍광을 연출한다.
정윤섭
마을 뒤 언덕에는 등대가 있다.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던 1907년 세워진 등대다. 그 등대 뒤에는 안개가 낄 때 종을 쳐 항해하는 배에게 섬의 위치를 알렸다는 무종이 있다. 등대는 마을 왼쪽으로 난 좁은 시멘트 길을 5백여 미터 올라가면 나온다. 등대를 관리하기 위해서인지 이 시멘트길 덕분에 길은 풀 속에 묻히지 않고 따라 오를 수 있다.
마을에서 10여분 언덕으로 오르면 등대와 무종이 나온다. 언덕 위에 넓은 서해바다를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는 이 등대와 무종의 모습이 독특하기도 하지만 해질 무렵에 보는 풍광은 더욱 아름답다.
네 개의 기둥으로 버티고 서있는 무종은 흡사 로마제국의 잔해를 보는 듯하다. 무종은 종탑으로 만들어진 네 개의 기둥 가운데 쇠고리에 매달려 있다. 종 옆에는 종을 칠 수 있는 망치가 있다. 무종에서 울려 나오는 은은하고 긴 여운은 아직도 그 역할이 끝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지금껏 서해바다를 내려다보며 항해하는 배들의 길잡이가 되어 주면서 서 있었던 무종이다. 무종은 서구의 건축양식이 가미된 듯한 그래서 서양과 동양의 건축 기법이 혼재된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이 무종은 1950년대에 세워진 것으로 황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음달거리가 2km에 달한다고 한다. 역사적 보존 가치가 높다 하여 현재 국립등대유물관 소장유물 4681호로 지정되어 있다(안내판 기록 참고).
무종은 철골이 들어간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오랜 세월에 외벽이 떨어져 나가고 기둥 속 철골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무종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근대유산이지만 기둥의 시멘트들이 벌어지며 더 떨어져 나가면 붕괴될 듯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모진 풍파의 세월을 잘 버티며 역사의 증언으로 오래도록 서서 허물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맹골도는 서해에서 남해로 접어드는 해로 상의 매우 중요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중국과 일본을 오가는 배들이 이 해역을 거쳐 갈 수밖에 없었다. 서남해역의 중요한 해상교통로 때문에 일본인들은 우리나라에 침략을 본격화하면서 여러 곳에 등대를 세운다.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화와 대륙침공을 위해 1899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의 연해에서 측량을 실시한다. 죽도 등대설치 또한 그 해로를 확보하기 위한 침략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등대 설치 시기에는 일본인들이 직접 이 등대를 운영하였다.
안내판에는 이 등대가 맹골군도 해역을 통항하는 선박의 안전항해를 위하여 조선총독부 체신국에서 1907년 12월 1일 최초 점등, 102년 동안 유인등대로 운영해 오다가, 2009년 10월 19일 무인등대로 전환하였다고 쓰여 있다.
서해바다를 바라보는 폭풍의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