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 토마토, 풀이 함께 자라는 텃밭
김정희
초여름이 시작되면 그야말로 밭은 모든 성장의 정점을 이룬다. 온갖 살아있는 것들이 제 모습을 멋내며 어우러진다. 풀은 풀대로 제 몫을 하는 여름이다. 죽어라 뽑아도 기꺼이 터를 잡아 두 번 세 번 다시 고개 드는 풀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풀은 풀대로 농작물은 그것들 대로 최선을 다하는 여름이다. 이런 최선을 다하여 사는 식물들에 사람은 기꺼이 손을 내밀어 주어야 한다. 애타는 그들의 처지를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살아 있는 것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주말에 토마토와 가지 순을 따고 묶어 주었다. 지난 금요일 요란하게 내렸던 비와 우박으로 고개가 꺾인 것도 있으나 대체로 굵은 줄기가 신뢰감을 준다. 실한 줄기에서 실한 열매가 나온다.
얼마 안 되는 밭작물도 틈틈이 여름날의 시간과 정성을 투자해야 그나마 먹을 것이 나온다. 농작물이야말로 적당한 시기가 있어서 잠시 때를 놓치면 늦되거나 볼품없고, 쭉정이 채 버려야 하는 일도 생긴다.
길을 걷다가 신호를 기다리며 혹은 집에서 훅 쏟는 땀보다, 밭에서 흘리는 땀이 개운하다. 열기가 온 얼굴과 몸에 올라오면 이마에서부터 흐르는 땀은 순식간에 전신으로 퍼져 옷이 푹 젖는다. 그렇게 두세 번 땀을 쏟고 나면 흘린 땀으로 시원해지는 몸을 느낄 수 있다. 땀이 땀을 식혀주는 것이다. 마치 몸에 깃든 나쁜 것들이 모두 빠져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스치는 바람 한 줄기는 고맙고 귀해서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지게 다가온다. 기분 좋은 일을 만나고 경험하는 일이란 사실 적은 것, 작은 것을 알아차릴 때 오는 것임을 알면서도 잊고 사는 게 삶인가 보다.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야말로 숭고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움직이는 만큼 내 몸과 밀착할 수 있고 밀착하는 만큼 나를 잘 볼 수 있으니 말이다.
기꺼이 땀을 들이는 여름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대구의 어느 한의원엘 데리고 다녔는데 한의사가 그랬다. 땀을 충분히 배출해 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땀 배출할 일이 많지 않은 요즘, 어쩌면 땀 흘리지 않아 몸이 탈이 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놀 일이 없으니 땀 흘릴 일도 없다.
어릴 적 엄마의 여름이 기억난다. 밭일을 마치고 돌아와 마루에 앉자마자 엄마가 하는 일은 땀에 젖은 셔츠를 벗는 일이었다. 마당의 우물에서 퍼 올린 두레박의 물은 엄마의 등에 사정없이 쏟아졌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는 일이 편치 않았다. 훌훌 벗고 목욕이라도 하면 되련만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곧바로 부엌에 들어가 식구들의 저녁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두 발 뻗고 편히 쉬는 시간은 늦은 밤이었다.
엄마의 일은 언제나 많았다. 동생들과 손을 보태 돕는다고 도와도 오히려 일을 더 저질러 놓기 일쑤여서 안 하는 것만 못했다. 이제 와 새삼 생각해 보니 엄마의 땀 흘려 젖은 여름이 우리를 키웠다. 곁에서 지켜보는 나는 안타까웠을지라도 엄마의 여름은 보람 있었을지 모른다. 손발 움직여 새끼들 입에 먹을 것 들이는 일을 즐겁게 했을지도.
엄마의 여름은 건강한 생산의 여름이었고, 아름다운 땀으로 얼룩진 여름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모든 일이 다 좋기만 한 것은 아니나, 다 나쁘지도 않으니, 어쩌면 엄마의 땀 흘린 그 여름날들이 엄마 인생의 최고 시절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텃밭 농사 조금 하면서 엄살 부리고 있으나, 그 몇 가지 안 되는 농작물은 내 여름을 집어삼킬 듯 손을 뻗는다. 몸을 움직여야 먹을 것을 내놓는다고. 그래야 먹을 수 있다고. 유월이다. 여름이 성큼 발을 내디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