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대교 위를 행진하고 있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
연정
"정규직 전환 의지 없는 한국가스공사 규탄한다!"
"정규직 전환 의지 없는 채희봉은 사퇴하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대통령이 책임져라!"
6월 5일 오전 서울 마포대교 위. '문재인 대통령은 정규직 전환 약속을 지켜라'가 적혀있는 노란색 몸 자보를 입은 한국가스공사(사장 채희봉)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한다. 한국가스공사 대구 본사와 전국 생산기지·지역본부 등에서 청소·시설·특수경비·전산·홍보 등의 업무를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공공운수노동조합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소속).
현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고 있는 업무는 원래 정규직이 하다가 1997년 IMF 이후 외주화(용역) 한 것이다. 매년 계약서를 새로 써야 하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삶을 살아왔다.
이들은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한국가스공사 평택기지본부-안산 경기지역본부-서울지역본부-청와대까지 가스 배관망을 따라 300리(118km)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6월 1일부터 매일 20~30km를 걸으면서 한국가스공사 경기본부와 국회 앞 등에서 노숙을 하고, 마지막 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요구를 전달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는 도보행진을 하고 있다.
역시 6월 1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한 인천국제공항공사 자회사·용역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이날 한국가스공사 노동자들과 만나 함께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투쟁하고 있는 국민건강보험공단 고객센터 노동자들도 이날 도보행진에 함께 했다.
"그동안 우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용역회사가 바뀔 때마다 이번에도 일 할 수 있을까 매일 불안에 떨었습니다. 물가가 오르고 국가에서 정한 임금이 올라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로 비정규직의 삶이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삶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한국가스공사 담당자의 말 한마디에 일자리를 잃어야 했고, 물가가 올라 월급을 올려달라고 해도 한국가스공사가 예산을 올려주지 않으면 월급이 오르지 않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더 이상 일자리가 불안하지 않고 비정규직이라고 월급 차별을 받지 않는 노동존중 사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고용을 안정시키고 차별적인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뻤습니다. 더 이상 가스공사 담당자의 눈 밖에 났다고 실업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국가에서 결정하는 시중노임단가가 인상되면 월급도 자동으로 오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희망을 갖고 가스공사와 협상하고 투쟁해왔습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대로 비정규직 노동자로 남아있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방송차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에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과 희망, 절망이 담겨있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지난해 2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2017년 7월 정부가 발표한 상시·지속 업무 종사자의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직접고용 할 것을 요구하며 20일 간의 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대구지역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득이하게 파업을 마무리하고 나서 오랜만에 거리에서 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난다. 4월 30일부터 세종시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천막농성도 하고 있다고 한다.
고령 노동자들이 하는 미화 업무가 청년 선호 일자리?
한국가스공사는 2017년 11월 이후 지난해 7월까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논의하기 위해 16차례의 노사전문가협의를 진행했으나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정규직 전환 방식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사장이 3번 바뀌고, 노사전문가협의회 사측위원이 5번 바뀌었다. 사장이 공석이었던 시기도 있었다.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었을 리 없다.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안정만 보장되는 무기계약직, 흔히 말하는 '중규직'에 불과한 직접고용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이마저도 거부했다.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전환에 관한 그간의 논의 과정은 지난하다. 처음에 한국가스공사는 (생명·안전 업무인) 소방·파견을 제외한 전 직종 자회사를 주장하다가 2019년 말 전 직종 직접고용으로 입장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오랜 기간 젊은 사람들이 지원조차 하지 않고 고령의 노동자들이 해온 미화·시설 등의 일자리를 청년선호 일자리라며 공개경쟁 채용을 하겠다고 했다.
또, 용역업체 65세 정년을 60세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회사로 가면 정년을 65세로 해준다고 했으니 애초부터 한국가스공사는 직접고용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 있겠다. 공개경쟁채용과 정년 60세 협박이 통하지 않자 지난해 2월 7일 한국가스공사는 다시 입장을 바꾸어 소방·파견을 제외한 전 직종에 대한 자회사 전환을 주장하며 직접고용은 회의 자리에서 얘기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정규직 노동조합인 한국가스공사지부가 직접고용을 반대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시중노임단가 적용 등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이 보장된 자회사 안에 대한 검토 의사를 밝히자 회사는 시간 끌기와 말 바꾸기로 일관한다. '자회사만 받아들이면 시중노임단가도 호봉제도 다 해줄게'라고 했던 가스공사는 막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논의 의사를 밝히자 자신들이 했던 말을 다 뒤집었다. 자회사 전환 시 한국가스공사와의 교섭 구조를 마련하는 안에 대해 '훌륭한 안'이라고 했던 한국가스공사는 언제 그랬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올해 4월 이후 한국가스공사 정규직 전환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사측이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담당자가 바뀌어서...'와 '기억이 나지 않는다'였다. 그래서 회의록을 들이밀면 '개인 의견일 뿐이다',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했다.
도보행진 4일차가 되던 날, 한국가스공사 노사전문가협의회 사측 단장이 찾아와 빠른 시일 내에 17차 노사전문가협의회를 열자고 이야기하고 갔다. 노동조합에서는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에 관한 안을 제시했지만, 이 또한 도보행진 투쟁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사측이 어떤 안을 들이밀지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