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스트레스로 우울증을 앓았던 김경래씨는 좋은 아빠, 다정한 남편이 되기 위해 아들 동해랑 단둘이 속초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시공사
경래씨는 내가 보낸 사전 질문지에 A4 10장 넘게 답을 해줬다. 대면 인터뷰한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경래씨를 만나러 가기 전날에 눈이 많이 내렸고 여전히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일 때라 인구 많은 수도권으로 가는 게 부담스러웠다. '글 쓰다가 부족한 건 전화 인터뷰 할까?' 잠깐 고민했다.
그래도 인터뷰는 직접 만나서 하는 게 최선, 일산 가는 버스를 탔다. 경래씨와 얼굴 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은 덕분에 알게 된 게 있었다. 나이키 마니아였던 그는 한정판 운동화를 팔아서 속초 한 달 살기 비용을 마련했다고 했다. 그만큼 절박하게 떠났기에 '혼자만의 동굴'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한달살기... 저도 곧 가보렵니다
인터뷰이들은 강릉, 속초, 지리산, 군산, 아산, 완주, 부산,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했다. 부부가, 아빠가 아들 데리고, 엄마가 남매 데리고, 혼자서, 또는 반려견들과 함께 많이 걷고, 책을 읽고, 현지인들을 사귀었다. 멀리서 친구들이 찾아오면 가이드로 변신했다. 한 달 살기 비용도 각자 상황에 맞게 30만 원(지자체 지원프로그램)에서 500만 원(주2회 골프 라운딩) 안팎으로 썼다.
집과 동네를 좋아하는 나도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를 쓰는 동안 다른 곳에 가서 살아보고 싶었다. 스무 살 봄에 떠나온 전남 영광,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도서관과 서점이 있는 충남 당진, 한 달 살기의 '원픽'으로 꼽는 제주도. 초등학생인 둘째 아이가 자기도 데려가라고 조르는 바람에 주저앉았다. 언젠가는 낯선 도시에서 한두 달 살겠다는 야망만은 그대로이다.
책을 펴내고 첫 번째로 좋은 순간은 출판사에서 보내준 실물 책이 도착할 때. 흡! 숨을 들이마시며 새 책 냄새를 맡아보고 촤르르 넘겨보고 사진을 찍는다. 그다음부터는 출판사 편집자도, 마케터도, 저자도 중쇄를 향해 간다. 나는 매일 아침 독자들이 모이는 한길문고 쪽으로 큰절을 한다.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는 독자들도 있으니까 와이파이 공유기에도 고개를 숙인다.
"작가님, 책 사러 왔는데 언제 오시나요?"
5월 28일 정오, 군산 한길문고에 입고된 <다녀왔습니다, 한 달 살기>를 사러 온 첫 번째 독자는 우리 동네 미용실 원장님이었다. 남편과 한 달 살기 하는 게 로망이라고 했다. 같이 온 김순정씨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고 싶다는 대학생 딸에게 책을 선물할 거라고 했다. 그날 온 독자들은 울릉도, 제주도, 강릉, 부산, 서울, 시골 어디, 뉴질랜드 등에서 한 달 살고 싶다며 사인을 받아갔다.
나는 한길문고라는 '홈그라운드'를 가진 운 좋은 작가. 10권, 15권, 20권씩 주문한 '연쇄 선물마' 독자들과도 만난다. 토요일 오후에는 3시간 동안 정성을 들여 사인하고 퇴근했다. 유일하게 본방사수 하는 '놀면 뭐하니?' 보다가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고등학교 때 지리산 종주하고 밥 먹다가 숟가락을 든 채 잠든 이후로 30여 년 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