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지는 날, 활동지원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중증장애인은 혼자 샤워를 하거나 냉방물품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김예지
사실은 너무나 긴밀하게 연결된 문제이다. 기후위기는 지구에 발붙이고 있는 모든 생명에게 닥치지만,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피해를 입는 건 아니다. 한 편에는 위기를 용케 피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고, 다른 한 편엔 그 충격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존재하는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아슬아슬 버티고 있던 사람들의 삶을 한층 더 위태롭게 만든다.
쉽게 상상해보자. 기후위기 때문에 폭염 일수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까. 아스팔트가 뜨겁게 달궈지는 날, 누군가는 에어컨을 켜고 집에서 쉬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어, 활동지원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중증장애인은 혼자 샤워를 하거나 냉방 물품을 사용하기가 어렵다.
배달기사(플랫폼 노동자)는 실질적으로 근로자에 해당하지만, 형식적으로는 자영업자 성격의 특수 고용직에 해당하기 때문에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이들은 근로자의 지위를 인정받았음에도 일을 멈출 수 없다. 폭염 폭설과 같은 상황에서 콜 거부를 할 수 있지만, 회사 측으로부터 계약해지를 당할 수 있기에 대부분 하지 않는다.
또 많은 청소년 성소수자가 가족의 억압을 피해 탈가정을 택하지만, 마땅히 머무를 공간을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전국에 총 147개의 청소년 쉼터가 있지만, 종교적인 이유로 성소수자 청소년의 입소를 거부하거나, 남성용/여성용 쉼터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갈 곳 없이 거리로 내몰렸을 때, 폭염 등 이상기후에 취약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받는 이주노동자들도 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만약 차별금지법이 제정된다면, 그래서 소수자들이 좀 더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된다면, 기후위기의 타격이 훨씬 줄어들 것이다. 누구나 폭염 시엔 작업 중지권을 행사하고, 안전한 쉼터에 입소하여 적절한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 그 시작이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그뿐인가.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 없이 기후정책을 추진하다가는 자칫 누군가를 배제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탈석탄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정책 중 하나다. 전 세계적인 흐름에 따라 우리 정부 역시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0기 중 30기의 문을 닫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발전소를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재취업 교육 방안이나 지원책이 추후에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산업전환 과정이 과연 평등할까. 일자리가 부족해지면 가장 먼저 떠나야 하는 건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또, 자신이 일하는 사업장이 폐쇄되면 어디로 재배치되는지 알 수 있는 정규직들과 달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확한 정보를 듣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 4월에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 발전비정규직 노동자 3634명 중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시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8.7%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대부분 회사가 아니라 언론이나 동료들로부터 알음알음 전해 듣는다.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문제인데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평등한 정보접근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다. 고용형태로 인한 차별을 예방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아닌 '동등한 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