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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금까지 신나게 맘대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나이 오십 즈음을 맞이하여 고비가 찾아왔다. 몸을 다쳤고 건강도 급격히 안 좋아졌고 오래 만난 남자 친구와 이별도 했다. 펀치가 쓰리콤보세트로 날아왔다. 마치 힘들게 넘어야 할 높은 방지턱에 걸려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세게 부딪힌 충격으로 내 마음의 나사와 스프링이 풀려버려 여기저기 튕겨나가 버렸다. 반세기 살아온 기념을 이런 식으로 거칠게 할 줄이야.
"방지턱이면 그나마 나아. 넘어가면 되잖아. 나는 진흙뻘이야. 허우적댈수록 빠져나올 수없어.
선배 말이 위로가 되긴 했다. '그래, 그까짓 거 사실 다친 건 잘 나으면 되고 남자 친구는 다시 사귀면 되고 갱년기는 죽을병도 아닌데 뭘'이라고 생각하면 될 일이긴 하다. 살면서 누구든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의외의 복병은 따로 있었다. 아플 때 내내 내 곁에 있어주었던 녀석. 바로 '외로움'이란 녀석이었다.
긴 병에 효자 없듯이 선택하지 않은 고독이 길어지니 외로움이 되었고 사람들과 만날 수 없는 철창없는 감옥이 그 외로움에 두께를 보탰다. 지독한 외로움을 알겠다. 내가 이렇게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나는 혼자 살 거야"라고 했을 때 어른들의 흔한 뒷 말. "나이 들면 외로워" 나는 이 말을 지금도 인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프면 외로워"라는 것은 이제 확실히 알겠다. 노화와 병마는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니 우리 비혼 독거인에게는 치명타다. 배운 게 있다. 늙더라도 아프더라도 외롭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나이 오십의 방지턱은 시작일 테고 남은 인생은 늙어 갈 일과 아플 일뿐이라 해도 큰 과장은 아니니 그래서 더 외로워질 것이란 것을 받아들이자. 이번 일 년의 고생은 남은 반세기의 외로움을 잘 준비하라는 불친절한 시그널이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 할 것인가? 길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데 방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는 지금 이 길 위 어디쯤인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하는 것이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종이를 꺼내는 것이다. 바로 오늘 밤 내가 할 일이다. 몇 개 크게 줄을 긋고 쓰는 것이다. 문제를 쓰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문제는 그것이 아닌 것들로부터 바라봐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거, 가지고 있는 거. 하고 싶은 거. 내 지인들을 죽 써본다. 생각나는 대로 써놓고 그냥 보는 거다. 어쩌면 내 삶이 이 종이보다 가볍게 느껴져 허탈해 질지도 모르겠지만 해법은 아니더라도 키워드 간의 우연하고도 엉뚱한 연결이 발랄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만의 특별하고도 귀여운 필살기 하나 장착하면 좋을 것 같다.
해법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꼭 극복해야만 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잘 견디기만 하는 것도 결코 나쁘지는 않을 듯싶다. 처음엔 외로움이 당황스러워 힘든 마음으로만 그 시간을 견뎠다. 그런데 한번 외로움과 만나보고 나니 다음번에는 처음이 아니라는 것만으로도 견딤이 수월할 것 같다.
재테크나 보험도 아니고 여행도 아니다. 내 남은 인생의 화두는 이제 '외로움'이다. 지금부터 찬찬히 고민해 볼 것이다. 해법이 없어도 외롭다고 징징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나를 사랑하듯 나의 외로움마저 사랑하며 잘 안고 달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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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두 마리 고양이 집사입니다. 오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고 부모님과 밭농사일을 하고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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