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시장 안정화 관련 입장을 발표하는 오세훈 서울시장. 2021.4.29
서울시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이 취임한 지 두 달이 돼 간다. 4.7 재보선 후 여당은 선거 패배에 대한 반성문이라며 부동산 소유자들의 세금을 깍아주는 규제 완화로 선회하고, 승기를 잡은 보수 야당은 민간의 투기판이 될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공급론을 부채질 하고 있다.
"스피드 공급" "재개발‧재건축 한 달 안에 규제 완화"를 전면에 내세웠던 오세훈 시장이 당선되면서,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한 기대감이 투기를 부추기고 서울 집값 상승을 촉발시키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저층주거지에 대한 민간 재개발 규제완화 정책을 발표해, 서울 전역의 투기와 집값 상승, 주거불안 심화가 우려된다. '집'으로 인한 서울 시민들의 고통과 절망을, 10여년 전 뉴타운과 용산참사 시대로의 역행으로 응답하고 있다.
과거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시기를 돌아보면, 도심 내 저렴 주택은 사라지고 주택 실소유자는 그다지 늘지 않았다. 당시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뉴타운·재개발 사업 전에는 매매가 5억 원 미만 주택비율이 86%에서 사업 후 30%로 줄로, 전세가 4000만 원 미만 주택비율도 83%였으나 사업 후에는 0%가 돼, 저렴 주택이 모두 사라진다는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통한 중대형 분양아파트 위주의 주택공급은 서민 주거안정보다는, 다주택자의 주택 수를 늘려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부동산 도시, 세입자의 도시
서울 아파트가 수십억 신고가를 또 경신했다는 아파트값 위주의 보도들을 보고 있으면, 서울은 그야말로 부동산 도시다. '패닉 바잉' '영끌'이라는 신조어들이 집 문제로 절망하는 시민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사용되지만, 사실상 부동산 욕망을 부추기고 투기를 감추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집에 대한 서울 시민들의 다양한 요구와 불안들을 모두 '부동산'으로 치환시키고 있다. 우리의 안정된 삶의 자리여야 할 '집'이 '부동산'과 '아파트'로만 불린다면, 서울 시민들의 집으로 인한 고통은 반복될 뿐이다. 부동산의 도시에 희망은 없다.
하지만 서울은 세입자들의 도시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유일하게, 무주택 가구 수가 주택 소유 가구보다 많은 곳이 서울이다. 물론 세입자 비율이 높다고 해서 세입자의 도시라고 할 수만은 없다. 미약한 세입자 권리와 서울 무주택자의 삶을 보면 세입자의 도시라고 하는 것은 민망하다.
일찍부터 독일 베를린시는 '세입자들의 도시'로 불리고 있다. 세입자 비율도 높지만 강력한 세입자 권리 보호 제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10여 년 사이 세입자 보호장치를 무력화시키려는 다국적 부동산 임대기업들의 꼼수가 극성을 부려 임대료 폭등문제가 심각하지만, 베를린 세입자들은 부동산기업에 대한 몰수(수용) 청원운동과 저렴한 공공임대주택 청원운동까지 벌이며 저항하고 있다.
잘 알려졌듯 지난해 초 베를린시 의회가 향후 5년간 임대료를 동결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는데, 최근 연방 법원이 임대료 동결은 지방 정부 권한이 아니라며 위헌 결정을 내려 베를린 세입자들의 저항이 커지고 있다. '세입자들의 도시'라는 칭호는 세입자를 보호하는 법률적 제도에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100년 전부터 뿌리내린 세입자협회 등을 비롯한 세입자 운동이 있어서 가능했다.
게다가 최근 임대료 폭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도인 베를린시는 뮌헨 등 다른 독일의 대도시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가 유지되는 도시다. 수도의 임대료가 다른 도시보다 더 낮다니, 서울을 생각하면 상상하기 어렵다. 베를린시는 세입자들의 도시이자, 노동자들의 도시, 가난한 예술가들의 도시로 불린다.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Berlin ist arm, aber sexy)'라는 2003년 당시 베를린시장 클라우스 보베라이트의 말처럼, 베를린은 노동자들과 이민자들, 가난한 학생과 예술가들이 살아가는 매력적인 도시이다. 수도 베를린시는 바로 이러한 노동자들과 가난한 예술가들이 부담 가능한 주거비로 살아갈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의 도시이며, 세입자들이 끊임없이 소리 내고 저항하는 도시다.
'해고와 퇴거' 이중고에 놓인 서울 세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