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상이네 가족이 심어야할 못자리. 마치 골프장 잔디를 연상시키는 300여 마지기의 논에 심을 모판들. 여기 말고 다른 곳에도 이만큼의 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오창경
우리 동네에서는 찔레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부터 모내기를 시작한다. 다시 모내기철이 돌아왔다. 논에 모내기를 하거나 벼를 수확하는 작업을 할 때면 생각이 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아버지가 운전하는 트랙터에서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서 논갈이를 보면서 컸던 아이다. 그는 어느 해부터는 아버지 대신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저쪽으로는 찔레꽃이 한창이고 논에는 이앙기가 오락가락 다니며 물이 찬 논에 모를 한 줌씩 꽂아 놓는 모습이 시골마을의 풍경을 장악하고 있다. 창고에 있던 트랙터, 지게차 등도 이앙기를 따라 나와서 사람들과 함께 바쁘게 돌아다닌다.
요즘 시골 마을 모내기철의 풍경은 최첨단 공업단지 못지않게 기계들의 각축장이다. 품앗이로 농사일을 하던 시절을 지나 규모화 되고 기계화된 영농이 실현되고 있다. 노동요 대신 기계들의 엔진소리가 들리는 곳이 21세기 농촌이다.
그 기계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이가 우리 동네에 나타났다. 아버지를 따라서 물꼬를 보러 다니고 트랙터로 논을 능숙하게 갈던 꼬마 농부가 청년 농부가 되어 부여군 충화면의 논을 접수하고 있는 중이다. 바로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은 유희상군이다.
한글보다 트랙터 상호를 먼저 외운 아이
희상이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따라 논둑에서 자랐다. 한글을 배우기 전부터 트랙터 상호를 외웠고 농기계의 성능에 대해서 줄줄이 꿰더니 초등학교 시절에는 트랙터로 논밭을 갈았다. 우리 동네에선 초등생 아이가 농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본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으로 보았다. 내가 그를 '희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우리 아이들과 함께 유치원을 다닌 아이였기 때문이다.
청년농부로 성장한 유희상군은 부여군 충화면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다. 어른들 못지않은 농사 지식과 농업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초딩 아이가 어느새 300여 마지기의 논농사를 짓는 MZ 세대 청년 농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