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5월 16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지난해 10월 정부는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2025년부터 매년의 재정적자(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값이 마이너스 수치인 경우)를 GDP의 3% 이내로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 내용이다(GDP 대비 –3%). 그리고 재정적자가 누적 돼서 형성되는 국가채무 역시 GDP의 60%를 넘지 못하게 통제하겠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2019년 5월 16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향후 5년간의 국가재정 운용계획을 발표하면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국가채무 비율 40%를 유지하면서 나라살림을 운용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은 107%, 일본은 220%,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답은 무엇일까? 결론은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어느 정도 수준일 때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이다. 특정한 이론적 근거가 없는 임의적 수치일 뿐이다. 장기재정계획을 발표할 2015년 당시 국가채무비율이 40%에 육박했기 때문에 채무비율 관리 수준을 40%로 정했을 뿐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미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4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국가채무비율을 43.9%로 예상했고, 앞으로 2022년 50.9%, 2024년 58.3%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그렇다면 기재부가 재정준칙 국가채무비율 60%를 상한선으로 잡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가? 일부 재정학자들은 1992년 유럽연합의 마스트리히트 조약(1992년 유럽 12개국이 타결한 유럽의 정치∙경제 통합에 관한 조약)에서 자국의 국가채무 비율을 60% 이하로 맞추도록 한 것에서 기준을 가져온 것으로 본다. 그러나 유럽에서도 이 기준은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유럽연합(EU) 회원국 재무장관들은 코로나19 대처를 위해 EU가 정한 재정 준칙을 일시 해제하는 데 합의했다. 따라서 우리가 이것을 기준으로 고수해야 할 이유는 없다.
재정건정성이라는 수치보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이 더 중요하다. 재정을 아무리 건전하게 해도 실제 재정을 낼 사람을 지키지 못한다면 재정건전성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위기 속에서 자영업자들이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 대출로 버텨왔고 이제 이것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것과 일자리를 잃는 등 민간의 소비능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부채를 둘러싼 세 가지 오해
국가가 국채를 발행해서 과감한 확대재정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하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반대 이유가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지운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부담을 지게 할 미래세대가 있는가? 대한민국은 이미 초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지금 청년들은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엄청난 자산과 소득불평등, 취업난 등으로 인해 '이번 생은 망했다'며 미래를 포기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절망감은 도박에 가까운 '코인광풍'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진정으로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면 지금 정부가 빚을 져서 국민의 삶을 지키고 미래세대가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부채는 미래 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투자다. 현재 세대가 없이는 미래세대도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또 확대재정에 반대하는 논리로 우리나라는 미국과 일본과 달리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 경제의 높은 재정 적자비율을 따라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데 질문을 해야 한다. 여기서 왜 갑자기 기축통화 얘기가 나오는 것인가?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를 위해 외국에서 돈을 빌리기라도 한단 말인가? 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나라는 나라가 빚을 진다고 하면 엄청난 공포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외국의 빚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채를 발행해서 국내에서 소비를 한다면 거시경제학 측면에서 '정부의 적자는 곧 민간의 흑자이고, 나라의 빚은 곧 민간의 자산이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국가부채가 너무 커서 더 이상 빚을 늘려서는 안 된다'는 논리다. 최근 언론에서 국가부채가 1천조 가까이 됐다는 보도를 많이 했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나라에 빚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지레 겁을 먹게 된다. 그런데 국가부채라는 것이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래 지금까지 국가 재정의 수입과 지출 차이가 누적된 회계장부상 기록일 뿐이다.
그리고 이 적자는 갚으라고 독촉 받는 빚이 아니다. 그저 다음 정부로 이월될 뿐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적으로 꾸준히 늘어왔다. 정부의 부채액이 증가하더라도 경제가 성장하면 경제규모(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의 하락으로 나타날 뿐이다.
따라서 '정부부채는 무조건 나쁘다'가 아니라 '정부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빚을 지느냐'가 중요하다. 정부부채로 경제위기 상황에서 생산성 침체를 극복하고 그 효과가 최소한 정부지출만큼만 일어난다고 하면 경제규모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상승하지도 않고, 정부가 부채를 질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결국 지금의 확대재정 문제는 코로나라는 전쟁의 상황에서 국가가 빚을 질지, 국민이 빚을 질지 선택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 미국의 보수적인 경제학자들이 '지금은 전쟁 상황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민간에서 피해를 보는 만큼 정부가 국채를 발행해서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 이유이다. 유럽에서도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원금을 대폭 늘리고 국가의 재정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시대, 이제 재정건전성 신화의 허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절대적인 재정균형 비율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임의로 정한 것뿐이며 이 또한 변한다. 나라가 빚을 져도 외채가 아닌 이상 국내 경제의 총수요를 살리고 국가 전체의 경제를 살린다면 국가채무비율의 분모가 커져서 재정건전성 역시 또 바뀔 것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재정건전성 신화에 기댄 재정준칙 비율이 아니라 사람들을 살리는 것이다. 만약 정부가 재정건전성에 집착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방치를 해서 자영업자들이 대량으로 파산을 하게 된다면 결국 자영업자들에게 대출을 해준 금융부문에도 위기가 찾아올 것이며 이는 전체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따라서 지금이야 말로 정부의 적극인 재정정책을 통해 코로나손실보상을 해야 할 때이며 이것이 바로 국가의 존재의 이유이다.
'특별재난연대세', '초부유세' 등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조세도입의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