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종필 님, 박성용 님, 문재학 님의 묘. 항쟁 마지막 날 도청을 지키다 총에 맞아 숨진 분들로, 묘비 앞에 '도청의 최후를 지킨 15인의 전사들' 팻말이 별도로 놓여있다.
서부원
문재학님과 함께 도청에서 삶을 마감한 안종필(2-41)님과 박성용(2-37)님은, 모두 친구들의 죽음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어 죽을 줄 뻔히 알면서도 끝내 도청을 떠나질 못했다. 고1이었던 문재학님과 안종필님은 같은 학교 동급생이었고, 박성용님은 대학 진학을 앞둔 고3이었다.
이들이 살아 있다면
그들은 총을 드는 대신 항쟁 마지막 날까지 시신을 닦고 관에 안치하거나 부상자들을 옮기고 돌보는 역할을 담당했다. 그것이 친구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는 일이라 여기며 스스로 위안 삼았다. 이들은 모두 27일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그들의 묘비 앞에 '도청의 최후를 지킨 15인의 전사들'이라는 영예로운 팻말이 놓인 이유다.
존칭을 생략하고 열여덟 분의 이름을 다시 떠올려본다. 박기현, 김완봉, 박금희, 박창권, 전영진, 이성귀, 김기운, 양창근, 박현숙, 황호걸, 방광범, 전재수, 김평용, 김부열, 김명숙, 문재학, 안종필, 그리고 박성용. 교사로서도 그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교육의 본령에 충실하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아이들이 5.18과 같은 상황을 겪게 된다면? 이는 아이들에게 묻기 전에 교사를 비롯한 기성세대 자신에게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저들이 살아 있다면, 지금 여야의 주류 정치인들과 동년배다. 저들의 숭고한 희생에 지금 권력을 틀어쥔 '또래'들은 과연 보답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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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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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 희생자 이름과 묘지 번호, 아이들도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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