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신년하례회 기념 사진. 두 번째 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예관 신규식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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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동맹과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전시체제가 된 러시아에서는 더 이상 국권회복운동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한인 지도자들은 방략을 바꾸었다.
만주와 러시아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다수의 한인애국자들은 유럽에서 발발한 제1차 대전이 독일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되고, 중국과 일본이 전쟁을 하게 되면 한국의 독립이 가능할 것이라는 나름의 희망적인 전망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중국에 21개조 요구를 제시하는 등 중국 침략의 의도를 보이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비교적 활동이 자유롭고 교통의 요충지인 상하이를 새로운 독립운동의 거점으로 택한 이들은 속속 상하이로 건너왔다. 이곳에서는 이미 신규식 등이 영국조계에서 배달학원을 설립하여 독립운동을 하고 있었다.
때를 같이하여 중국 청도에서 조성환, 베이징에서 성낙형, 시베리아에서 유동열, 국내에서 유홍열과 이춘일 등 민족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였다. 사전에 비밀리에 연통한 것이다. 뜻을 같이한 이들은 신한혁명당을 조직하고 본부장에 이상설, 감독에 박은식을 선임하였다. 신규식은 상하이의 책임을 맡았다. 신한혁명당의 조직체계는 다음과 같다.
신한혁명당 본부와 지부
본부장 : 이상설
재정부장:이춘일
교통부장:유동열
외교부장:성낙형
지부 - 중국
감독 : 박은식
상해 : 신규식
한구(漢口) : 김위원
봉천:
장춘 : 이동휘
안동부 :
연길현 : 이동춘
지부 - 국내
서울 : 난회(蘭會)조직활용
원산:
평양 : 정항준
희령 : 박정래
나남 : 강재후
〈출전〉 강영심, 「신한혁명당의 결성과 활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2, 1988, 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