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이 된 GS25 포스터(왼쪽)는 교체됐다
GS25
최근 여러 차례 이어진 '남혐' 논란은 문제의 손동작에 집중하고 있다. 해당 손 모양이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는 것인데, 사실상 일상에서 흔하게 쓰일 수 있는 손동작인 만큼 오해에 휩싸인 쪽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번 남성 혐오의 의도가 있다는 지적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분위기다.
결국 논란에 대한 해명은 비슷한 수순을 밟는다. 남혐에 대한 의도는 없었으며, 앞으로는 그러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더욱 주의하겠다는 것이다. 유명인이나 브랜드 입장에서 남성 혐오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지 않기 위해서는 발빠른 사과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논란이 계속된다면 결국 앞으로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남성 혐오를 상징한다고 여겨지는 요소를 세심히 살피고, 그 근처라도 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자기검열의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불쾌하게 할 수 있는 각종 혐오가 담긴 단어는 당연히 쓰지 않는 것이 옳다. 우리가 지금껏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게 실은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거나,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면 그걸 깨닫고 스스로 돌아보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요구되는 자기검열은 과연 합당한 것일까.
지금의 '남혐에 대한 지적'은 실제로 무엇이 혐오로 작용하고 있으며, 무엇이 그들을 억압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는가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럴 만한 맥락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논란을 부풀려 '내가 남성 혐오를 한다고 오해받으면 어쩌지?', '혹시 페미니스트로 보이면 어쩌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이끌어 낸다.
반대로 기존에 여성 혐오의 대표적인 단어로 여겨졌던 '된장녀'나 '김치녀' 같은 단어는 실제로 여성의 자유로운 소비나 표현을 위축시켰다. '오또케 오또케'도 마찬가지로 여성이 어떤 일을 제대로 해결하거나 수습하지 못한다는 실질적 편견과 부정적인 이미지를 강화해 여성들이 '그렇게 보이지 않기 위해서' 애쓰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엄지와 검지를 이용한 손가락 모양은 지금까지의 여성 혐오와는 맥락을 달리한다. 남성들은 그 손가락 모양이 만드는 사회적 편견이나 억압으로부터 어떤 피해를 입고 있는가. 도리어 지금의 논란은 혐오에 대한 본질적인 의미마저 흐리고 있다. 단순한 손동작이 대표적인 혐오의 일종인 것처럼 지적되면서, 약자 혐오를 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만들고 있다.
'페미니즘은 악(惡)'이라는 세뇌
얼마 전에는 교사들이 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 세뇌하고 있다며, '교사 비밀 조직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오는 일이 있었다. '교사를 주축으로 한 비밀 단체가 은밀히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주입하고 있으며,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으로 아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도리어 묻고 싶다. 남성의 권위에 조금이라도 도전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움직임을 숙청하려 드는 이들이 오히려 우리 사회를 세뇌하려 하고 있지 않은지. 남성 혐오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표면적인 이유를 내세우며, 페미니즘은 감히 의견을 드러낼 수 없도록 세상으로부터 배제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주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