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휠체어 여행4월말, 처음으로 휠체어를 밀려 연못 나들이를 갔다. 짙은 꽃들이, 넓은 연못이 어머니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곳들이 휠체어 밀고 갈 만한 거리에 있어 다행스럽다.
이진순
물론 차가 없는 삶은 불편한 점이 많겠지만, 그 불편함 때문에 가능한 상상의 영역들이 있는 것 같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던 즈음, 앞으로 날이 따뜻해지면 어머니랑 바닷가나 마을 연못 등을 산책하고 싶었다. 차가 있었다면 고민할 것 없이 편하게 어머니를 태우고 다녀오면 되었겠지만, 차가 없으니 궁리가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5분 정도 넘게 걷는 건 불가능할 텐데...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휠체어 대여'였다. 요즘 복지 서비스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서 휠체어도 큰 경제적 부담 없이 빌릴 수 있을 것 같아 알아보았더니 정말 너무 부담이 없었다. 드디어 4월 초에 번듯한 새 휠체어가 도착했다. 일단 거실에서 앉아보고 타보고 나서 흡족한 마음으로 잘 모셔두었다.
4월 마지막 일요일, 마치 봄 산책을 위한 날인 듯 화창한 날씨를 맞아 집을 나섰다. 바닷가에 갈 생각이었는데, 바람이 갑자기 거세져서 마을 연못으로 방향을 돌렸다. 지리산의 골바람도 만만치는 않지만, 이곳 제주의 바람은 한 수 위다. 몸이 휘청대고 작은 차마저도 흔들림을 느낄 정도로 강풍이 부는 날이 꽤 있다. 바람의 기세에 우산과 모자 등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때가 많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나는 휠체어를 밀면서 연못을 향했다. 휠체어를 미는 나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어머니는 가능한 휠체어에 앉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걸으려 했다. 곳곳에 피어난 꽃구경도 하고, 넓은 연못 정자에 앉아 물새도 보며 쉬다가 돌아왔다.
다음 일요일에도 우리의 휠체어 여행은 이어졌다. 이번 목적지는 나랑 같이 살기 전에 사셨던 어머니 집이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 가꿨던 만큼 예쁘게 만들 자신은 없지만, 부모님의 손길이 배어 있는 조그만 마당과 밭을 오가며 풀도 베고 작물도 심고 있다.
혼자서 걸으면 30~40분 걸리는데, 어머니랑 같이 지팡이 짚고 휠체어 타고 가보니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가다가 빨간 장미가 예쁜 곳에서는 사진도 찍고, 힘들면 밭 돌담에 앉아 쉬기도 했다. 사람들은 돈 들이고 시간 들여가면서 제주도에 걸으러 오는데, 우린 그냥 집 나서면 걸을 수 있으니 너무 좋지 않냐며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의 얼굴도 밝다.
그동안 겨울에는 집안에서라도 운동 삼아 걸으라고 했었는데, 어머니는 조금 걷다가 허리가 아프다며 바로 앉곤 하셨다. '1~2년 전보다 걷는 것도 많이 힘들어졌구나' 생각했었는데, 산책을 나와 보니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처음에 조금 걷다가 거의 휠체어에 앉아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머니는 몇 년 전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잘 걸었다. 나를 덜 힘들게 하려는 생각에 애를 쓴 것도 있었지만,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걷다 보면 어느새 꽤 먼 거리를 와 있곤 했다.
삶도, 여행도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