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저금통시설에 있는 동안 센터 아이들과 함께 나눔을 위한 희망 저금통에 조금씩 동전을 모았다. 절반 정도 채워졌을 때 도움이 필요한 시설의 가정에 기부를 했다.
김인철
'서는 자리가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라고 했던가. 삶과 일터의 거리가 두 도시를 넘나들 정도로 넓어지니 그동안 출퇴근하면서 경험하지 않던 상황들이 생겼다.
가장 먼저 일주일 중 하루는 센터 일이 늦게 끝나거나 몸이 피곤할 땐 사무실에서 자야 했다. 오전에 기관 회의가 있을 때나 토요일 프로그램이 잡히면 센터에서 잠을 잤다. 가까운 찜질방에서 자기도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두 눈에 핏발이 섰다.
퇴근은 오후 7시지만 늘 한 시간 쯤 지나서 출발했다. 집에 도착하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어 서울 시내로 들어가면 퇴근 시간
만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조금 과장하면 명절에 꽉 막히는 고향을 매일 다녀오는 느낌이었다.
교통사고도 자주 목격했다. 흐름이 원활한 구간이 막히면 십중팔구는 사고 때문이었다. 차량이 도로에 전복된 채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뒤로 견인차 서너 대가 줄을 이었다. 사람들은 울먹이며 통화를 했다. 충격이 며칠은 갔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생리현상이었다. 특히 금요일처럼 퇴근 시간이 꽉 막히는 도로 한복판에서 생리 현상이 찾아오면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경로에 주유소나 화장실이 없어서 참기 힘들면 서울 시내로 빠져야 했다.
자동차도 고장이 났다. 한번은 분당수서간 도로에 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계기판 엔진 경고등에 불이 들어오더니 차가 꿀렁거렸다.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꿀렁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중간에 빠질 수도 없었다. 비상등을 켠 채 사십킬로를 천천히 주행했다. 정비소에 도착했다. 다리에 쥐가 났다. 점화 코일 하나가 문제였다.
여름 장마에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월요일이 선생님 휴가라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월요일부터 폭우가 쏟아졌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였다. 밤에도 쏟아졌다. 고민하다 사무실에서 잤다. 사무실에서 자는 게 익숙해졌다. 화요일도 폭우가 쏟아졌다. 도로는 빗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날은 집으로 가기로 했다. 시동을 켜고 엉금엉금 차를 움직이는데 계기판에 침수 경고등이 들어왔다.
자유로를 타려는데 우비를 입은 경찰이 우회전 진입을 막았다. 진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이 아득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진심으로 집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핸들을 사무실로 돌렸다. 가는 동안에도 폭우는 쏟아졌고 침수 경고등은 깜빡거렸다.
일층에 식품회사가 있어서 바퀴벌레가 있다. 자주 소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날은 축구 한/일전을 하던 날이었다. 밤이 되자 바퀴벌레들이 활동을 시작했다. 스르륵. 사사삭. 불을 켜자 거실에 모여있던 놈들이 번개처럼 흩어졌다. 한 시간 남짓 바퀴벌레 세 마리를 잡았다. 승리가 가까웠다. 한일전도 이겼는데 이까짓 바퀴벌레쯤이야.
문득 소름이 돋았다. 밤사이 무의식의 심연을 헤매고 있을 내 몸을 지켜줄 무기가 필요했다. 그 무기는 24시 편의점에 있었다. 에프킬라. 육천구백 원이다. 사무실 한편 이부자리 주변으로 에프킬라를 사정없이 뿌렸다. 전에도 놈들은 내 몸과 얼굴을 더듬었을 것이다.
잠이 들었다. 스르륵. 사사삭. 스스슥. 무언가가 내 목을 더듬었다. 으아악. 정신을 차리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섬광처럼 몸을 일으킨 후 손으로 목을 털어냈다. 불을 켜고 보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배를 하늘로 까뒤집은 채 발을 버둥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놈을 향해 바퀴벌레약을 사정없이 뿌려댔다. 놈은 십 초 정도 몸서리를 치더니 축 늘어졌다.
삶의 질과 일터의 거리는 반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