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 부터), 백혜련 디지털성범죄근절대책 단장,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텔레그램 n번방' 재발 방지 등을 위해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 당정협의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렇게 보면 국회가 입법부의 역할을 잘 수행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n번방은 2018년 말에 만들어졌는데, 국회에서는 국민청원을 통한 국민의 분노 표출이 있은 뒤 2020년 3월에 부랴부랴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특히 당시 여야 의원들은 n번방 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일부 의원들은 '놀이문화'로 언급하며 개인의 자유를 법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018년 발의한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은 촬영물이 유포되는 플랫폼에 형사 책임을 묻고 있는데, 이 법안에는 불법 촬영물 유통사이트 운영자가 그 전송을 방지하고, 촬영물 당사자로부터 삭제 요청을 받을 시에는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내용이 이미 담겨 있는 것이다. 또한,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10월 촬영물을 실제 유포하지 않더라도 유포 협박하거나 강요한 경우 성범죄로 처벌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의견들은 법안심사소위원회 등에서 묵살됐고, n번방 사건처럼 큰 사건이 일어난 후여야만 국회의원들이 실제 활동을 하는 안타까운 현상이 일어났다.
n번방 사건의 형태처럼 사건 전의 입법 활동이 있었더라면 더욱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음주운전 관련 법인 '윤창호법'이라든지, 최근의 일어난 아동학대 사건인 '정인이법' 등 만일 미리 법을 제정했다면 법 이름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뒷북 입법' 현상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국회의원이 국민의 공감대와는 달리 늦게 입법 활동을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법의 특성 때문이다. 법이 가지고 있는 이념은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으로 세 가지인데, 이중 법적 안정성이란 법이 국민의 일반생활을 규율하고 법이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