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근현대 미술작품이 몰려있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서울대공원안에 위치하면서 우리나라의 근현대 작품을 두루 살펴볼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경이다. 늘 상설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운민
현대미술의 이미지는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인상으로 남아 있을까? 미술이 대체적으로 그렇지만 특히 현대미술은 우리가 다가가기 어려운 사조 일지 모른다. 그나마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같은 팝아트 예술가의 작품들은 흔하게 접하기도 하고, 만화를 보는 것 같은 익숙함이 있어서 그나마 편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설치미술이나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한 그림 같은 경우 그 텍스트를 읽어보는 것 자체에 피로감이 들 때가 많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대미술의 텍스트를 읽는 행위 자체를 즐거움으로 바꾸기만 한다면 좀 더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고, 삶의 영감과 인생의 진리를 한 편의 작품으로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근현대 미술작품을 중심으로 시대별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미술관이 바로 과천에 위치한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일명 3대 사립미술관이라 불리는 호암(리움 포함), 호림, 간송미술관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미술관의 소장품이 넉넉지 않은 편이기에 유명 작가의 기획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미술관을 대표하는 곳인 만큼 우리가 교과서나 기타 매체를 통해 알만한 작가의 작품의 소장품이 많은 곳이다. 그런 작품들을 시대별로 정리해서 시대를 보는 눈이란 주제로 상설전을 열고 있다. 한국 현대 미술의 흐름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방문해야 할 장소라 생각된다.
요즘 서울에도 덕수궁과 경복궁 바로 옆에 분원이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상에는 못 미친다. 그런 만큼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우리가 알만한 쟁쟁한 작가의 조각품이 저마다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현대미술관의 상설전은 3층에서 시작해 2층으로 내려가면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는 방향으로 관람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 동선을 따라가면, 한국의 사회적 상황 속에서 미술이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시를 처음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먼저 들어갈 전시실은 1900년대 초 <전통미술의 변화와 유화의 도입>이다. 조선시대 말기, 즉 대한제국 시기인데 서양의 문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면서 전통 화법으로만 그려졌던 우리의 그림들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미 조선시대에도 수많은 중인층 직업화가 들이 있었지만, 궁에 속해있거나 고위층의 미술품 수요를 충족시켜주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이 고종황제의 초상을 제작한 어진화가 채용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을사늑약 체결 후 낙향하여 위정척사파 거두들의 초상화를 이전과 다른 사진과 같은 기법으로 정교하고 세밀하게 서양화처럼 그려냈다. 한편 안중식, 김규진 등 근대화가들은 미술학교와도 같은 서화연구소를 만들어 전통과 근대의 기로에서 오래된 가치와 새로운 기술을 접목해 나갔다.
다음 전시실에 가면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기의 우리 그림들을 엿볼 수 있다. 일명 '문화통치' 시기에 일제는 1922년 조선 미술전람회를 개설하여 매년 총독부 주도의 미술전시를 열었다. 하지만 한국의 미술가들은 서화협회를 중심으로 '서화협회전'을 열기도 했다.
조선 미술전람회는 사실상 화가들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다. 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한 야심 찬 크기의 전시용 작품들이 제작되었고, 천편일률적인 양식과 소재의 작품들에서 점차 탈피하게 된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때 단순히 아카데믹한 작품보다 그 당시 서양에서 유행했던 사조인 야수파와 초현실주의, 추상의 요소가 접목된 작품들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3전시실에 들어가면 해방과 전후 미술 시기의 작품들을 보면서 교과서에서 익히 보던 화가의 이름이 나오기 시작한다. 비록 이 시대는 이념 분쟁 및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던 때였지만, 한국적 서정에 바탕을 두고 한국의 산하를 소재로 대작들이 꽃피기도 했다. 이때의 대표적 화가가 이중섭, 김환기, 유영국 등으로 그 유명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이 전시실에서 발길을 좀처럼 돌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