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나 쌀과 라면은 함께이지 않을까요?
오마이뉴스
이걸 라면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라면 사랑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세계 인스턴트 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연간 세계 라면 소비량은 2019년 기준으로 1,060억 개라고 한다. 라면이 가장 많이 소비되는 나라는 중국이지만, 국가적 단위가 아닌 1인당 라면 소비량 1위는 단연 한국이고, 1인당 연간 75.6개의 라면을 소비한다고 한다.
대략 일주일에 한두 개 정도 먹는 것이 평균이라지만 우리 집은 미미하게 조금 더 높을 것 같다. 서민들을 위해 값싸지만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식품이었던 라면은 어느새 기호식품이 되었다. 우리의 경우도 쌀이 똑 떨어졌을 때 대체용만은 아니고 라면은 절대 떨어뜨리면 안 되는 먹거리기도 하다. 특히 해외여행을 갈 때에는 빼놓지 않고 준비하는 것이 바로 라면이다.
라면에 즉석 밥과 전기냄비까지 가방에 챙기면 여행 준비가 끝이 난다. 먹거리에 어려움을 느끼는 어떤 곳에서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집에서 끓일 때에도 라면 냄새는 온 집안을 장악할 만큼 진하지만, 해외에서는 더 자극적이고 진하게 느껴져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그럼에도 내 나라의 향기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버티기도 한다.
즉석밥과 함께 라면을 끓이면 어떤 한 끼도 부럽지 않을 만큼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고기를 사 와서 스테이크와 함께 먹을 때에도 어울렸고, 빵과 치즈로 뭔가 헛헛한 식사를 했을 때에도 라면 하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곤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라면의 진가는 냄새다. 라면 냄새가 주는 강력한 자극, 집에서의 라면 한 끼는 때론 때움이지만, 해외에서의 라면 한 끼는 풍요로운 사치다. 라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며 목으로 면발이 넘어갈 때면 유적지를 거닐 때의 눈호강보다 더 큰 호사를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어디 해외에서 뿐일까. 병원 신세를 길게 진 적이 몇 번 있다. 체력을 잃고 입맛도 잃어 어떤 것을 가져와도 맛있게 먹을 수 없었지만, 그 상황에서도 생각나는 것이 라면이었다. 금식의 경험에서도 그랬다. 며칠 굶어 보면 가장 생각나는 것이 라면이다. 라면 국물 한 숟갈 넘기고 싶은 강력한 유혹, 결국 이기지 못하고 라면을 먹고야 말았다.
한 숟갈 넘기면 속 깊은 곳에서 흡족함이 올라온다. 인간의 오감 중 감정과 가장 깊숙하게 연결된 감각이라는 후각, 맛있었던 냄새의 기억은 아픔도 잊고 건강에 대한 염려도 잊게 만든다. 아마도 후각의 자극이 아니라면 라면이 이처럼 강력한 기호식품이 되지는 못했을 것 같다.
'시각적인 기억은 3개월이 지나면 30%밖에 남지 않지만, 냄새에 관한 기억은 1년이 지나도 100% 남는다'라고 노르웨이 냄새 예술가인 시셀 톨라스는 말했다고 한다. 유럽의 냄새가 오래된 성당과 중세의 건축물이 주는 냄새라면, 우리나라의 냄새는 김치의 진한 향과 더불어 라면이 쌍벽을 이룬다. 그래서 그 둘이 단짝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후각을 철학자 칸트는 가장 배은망덕하고 쓸모없어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태블릿 등 디지털 기기와 후각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했을 때 53%가 후각을 포기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EBS 지식채널 e <오늘의 냄새> 중). 철학자 칸트의 생각이나 후각을 포기한 사람들을 범인의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뿐이다.
EBS 지식채널 e, <냄새를 전시합니다>에서 각 도시의 냄새를 화학적으로 재가공한 전시를 소개했다. 이른바 냄새가 예술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의 냄새는 무엇일까? 내 집, 내 가족, 익숙한 환경에 안도하게 만드는 그 진한 후각, 아마도 라면의 냄새는 아닐까. 냄새 없는 라면? 왠지 맛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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