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코스트코에 진열된 CJ 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 세 가지
김수진
라면뿐일까. 김치의 화려한 비상 또한 그에 못지않다. 지난 4월 21일 관세청과 식품업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김치 수출액은 4657만 3천 달러(약 523억 3408만 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케이팝 등 한류가 케이푸드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역시 김치수출 역군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발효된 배추가 면역시스템을 강화하고 코로나 증상 완화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한국음식을 사랑하는 것으로 알려진 유명 배우 기네스 팰트로가 코로나 극복을 위해 김치를 먹었다고 밝히는 등, 김치가 코로나 퇴치에 유익한 건강식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된 때문이다.
김치 만드는 법 외에도 김치 스튜, 김치만두, 김치 볶음 등 김치를 활용한 요리법들이 여러 매체와 SNS에서 영어로 공유되고, 코스트코 냉장고 한 면이 김치로 메워지는가 하면, 김치 파는 곳을 알려주는 기사가 나기도 한다. 김치가 서양인들에게도 더이상 냄새나는 먼 나라 음식이 아닌 이색적인 건강식품이 되고 있다.
냉동만두의 질주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집밥 트렌드 덕도 있겠지만, CJ 제일제당의 '비비고 만두'는 현지인들의 입맛을 반영한 만두로 이곳 식품업계를 제대로 공략했다. 서양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한국음식 중 하나인 불고기를 넣어 만든 것과 이들이 선호하는 식재료인 치킨과 고수를 넣어 만든 것, 그리고 찐만두 이렇게 세 가지 만두가 코스트코 냉동코너에 항상 들어차 있으니 '연간 글로벌 매출 1조 원 돌파'라는 '비비고 만두'의 신화를 현지에서 몸소 체험하는 중이다.
현지마트에 진열되는 한국음식들 외에도 한국음식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음을 알리는 징표들은 곳곳에서 있어왔다. 2016년에는 글로벌 샌드위치 체인점 '써브웨이'에서 여름 특별식으로 '한국식 제육볶음 샌드위치(Korean BBQ Pulled Pork Sandwich)'를 선보였다. 지난 1월에는 미국의 유명 햄버거 브랜드 '쉐이크쉑(ShakeShack)'에서 "백김치 슬로우 위에 고추장 바른 바삭한 닭가슴살을 얹어" 만든 버거를 소개했다. '고추장 마요 소스'와 함께 제공되는 '한국식 고추장 순살치킨'과 '한국식 고추장 감자튀김'도 선보였다. 광고에는 "고추장: 매콤 달콤하며 감칠맛 가득한 붉은 고추 양념+한국 요리의 주성분"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캐나다 뉴브런스윅주의 한 마을에서 불고기 피자가 현지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지난 4월 16일 <한국경제>에는 미국에서 '한국식 컵밥'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송정훈 대표의 이야기가 실렸다. 불고기, 제육, 치킨, 잡채 덮밥을 파는 '컵밥(CUPBOP)'은 2013년 작은 푸드트럭으로 시작해 최근 42번째 매장을 열었고, 매출은 매년 뛰어 지난해엔 1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고 한다. 이러한 모든 예가 한국음식의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한국음식을 즐기는 이들이 확실히 늘고 있음을 느낀다. 2018년 퀘백으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드라마 <도깨비>가 그야말로 초절정 인기여서 골목골목 가는 곳마다 OST가 흐르고 있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레스토랑 메뉴에 '김치버거'가 있었다. 샐러드처럼 만들어진 김치를 넣은 버거였는데 꽤 맛있었다.
'김'의 경우에도 획기적이라 할만한 변화가 일었다. 예전 서양인들에게 김이란 '검은 종이' 같아 맛보기도 전에 거부감을 느끼는 음식이었다면, 이젠 딸의 친구 중에 학교에 김을 싸 오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처럼 밥과 함께 먹는 게 아니라 마치 과자 먹듯 김만 먹는다지만 뭐 어떠랴. 그것도 나름의 '현지화'일 테지.
캐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자주 주문한 음식
이곳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다. 서양식 레스토랑이었지만, 한국분이 운영하는 터라 한국음식도 함께 팔고 있었다. 그런데 매일같이 오시는 캐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가장 자주 주문하는 음식은 햄버거나 샌드위치가 아닌 돌솥비빔밥과 볶음밥이었다. '치직치지직~' 소리가 나는 돌솥비빔밥을 들고 지나갈 때면 손님들의 시선도 함께 따라왔다.
돌그릇에 담겨 맛난 냄새 풍기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등장하는 이 음식을 처음 본 손님들은 호기심에 주문해본 뒤 다음에 또 주문하곤 했다. 원어민 교사 등으로 한국에서 살다 왔거나 방문한 경험이 있는 손님들도 종종 마주치곤 했는데, 그들은 한국의 맛을 잊지 못한다며 김치를 더 줄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작년 식품업계 해외 매출이 전년 대비 2조 2769억 증가해 20조 7123억 원이라고 한다. 언뜻 잘 헤아려지지 않는 숫자지만, 그 숫자를 현지에서 실감하고 있다. 아득하게만 보이던 한국음식의 세계화 가능성은 이미 넘치게 증명되고 있다. '케이 푸드 열풍'이라고들 한다. 이 바람이 일시적 돌풍으로 끝나지 않도록, 이제 정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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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할아버지가 가장 많이 주문한 음식, 돌솥비빔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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