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800m 고지에 데크가 설치되어 남녀노소 편하게 걸을 수 있다. 4월 중순에 촬영한 모습.
남준식
부드러운 산세 위로 물결치는 사자평 억새군락
누가 처음 그 이름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영남알프스는 밀양·울산·양산·청도에 걸쳐 형성된 해발 1000m가 넘는 9개 산이 유럽의 알프스와 견줄 만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중에서도 가지산(1241m)은 이미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은 바 있고, 신불산(1159m)과 재약산(1108m), 천황산(1189m), 운문산(1188m)은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에 통째로 포함될 정도로 영남알프스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선물 보따리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신불산과 영축산 사이 60만여 평, 간월재 10만여 평, 그리고 재약산 사자평 125만여 평은 온통 억새밭 천지다. 이 노다지를 어떻게 개발할지 궁리하던 울주군은 2012년 총 15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탐방길을 조성했다. '하늘억새길'이다.
사람들은 바로 이 하늘억새길을 걸으려고 영남알프스를 찾는다. 트레킹 코스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벤치마킹한 하늘억새길은 길이 30km, 완전히 도는 데만 20여 시간이 걸리는 제법 긴 코스인지라 총 다섯 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그렇다면 이 넓디넓은 산자락에 처음 발을 디딘 외지인은 응당 어느 구간을 걸어야 할지 헷갈릴 만도 한데, 배내고개~능동산~얼음골 케이블카~샘물상회~천황산~재약산~사자평~주암계곡~주암마을 코스(약 6시간 소요)를 걸어봐야 비로소 영남알프스의 하이라이트를 다 봤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 가야 할까?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는 가을을 비단 최고로 치겠으나, 눈 녹고 녹음이 짙어지기 전 억새 위로 피어나는 봄 아지랑이 또한 아는 사람만 아는 영남알프스의 멋이다. 긴 겨울 보내고 따가운 봄 햇볕에 바싹 구워진 억새 한 대 꺾으면 수수깡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밀양 장꾼과 언양 장꾼이 물건을 교환했다던 배내고개는 지금도 산간 오지이지만 하늘억새길의 출발점이 되면서 그나마 등산객으로 활기가 돈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오르다 보면 능동산(981m) 정상이 보이고, 임도를 따라 다시 1시간 정도 걸으면 얼음골 케이블카가 나온다.
이 커다란 3층짜리 건물은 깔끔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여러모로 등산객의 편의를 봐주고 있으나 조금만 더 걸어가면 나오는 샘물상회에 왠지 더 정감이 가는 까닭은 오랜 세월 길손들의 허기와 갈증을 달래준 새참과 주인장 내외의 정겨운 사투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