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공 이순신의 묘 전경충무공 이순신의 밑에서 임진왜란의 주요 전장 마다 활약을 했었던 무의공 이순신의 묘가 광명역에서 머지 않은 거리에 있다.
운민
이케아에서 머지않은 거리에서 서독산 자락을 올라간다. 산길을 걸어 올라간다고 해서 처음에는 힘든 등산이 되지 않을까 치기 어린 걱정도 했었지만 그를 만나러 가는 산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200미터를 걸어 올라가니 그분의 묘역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전에 무의공 이순신에 대해 잠깐 언급을 하고 지나가자면 우선 우리가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과 동명이인이지만 본관이 전주로 다르다고 한다. 그렇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특히 옥포해전, 합포 해전 등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충무공이 특별히 아끼는 마음으로 선조에게 직접 장계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방답첨사 이순신(무의공)은 적과 싸울 때 언제나 선두에서 공을 세웠으나 적을 죽이고 적의 배를 침몰시키는 데에만 힘쓰고 머리를 베는 일은 힘쓰지 않아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계의 내용을 통해 무의공의 활약을 알 수 있음은 물론 충무공이 얼마나 무의공을 아꼈는지 엿볼 수 있다. 특히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하고, 지휘의 빈자리를 무의공 이순신 장군이 대신 맡아서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충무공 못지않게 무의공 이순신에 대해서도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무의공 이순신의 묘는 화려하지도 않고 많은 사람들이 찾지도 않아 다소 쓸쓸해 보였다. 그래도 무덤가에 꽃다발이 놓아져 있는 것을 보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조금은 있는지도 모르겠다. 광명이 낳은 또 다른 위대한 인물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시 광명동굴로 가던 길을 재촉한다. 가학산 방면으로 방향을 틀면 산을 깎아지른 듯한 협곡이 나오고 건너편에는 흡사 공장의 굴뚝같은 거대한 건물이 눈앞에 우뚝 서 있었다. 바로 광명시 자원회수시설이라 불리는 장소다.
다소 고개를 갸우뚱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광명동굴과 관련 깊은 시설이라 할 수 있다. 광명동굴이 폐광된 이후 비가 내릴 때마다 광산에서 이물질이 흘려 내려와 토양이 오염되면서 농작물 재배가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1999년 지금의 자리에 벽을 쌓고 이물질이 나오는 곳을 봉쇄한 후 토양오염방지시설을 설치 후 복원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내부는 볼거리가 딱히 많은 건 아니지만 광명동굴과 연계한 환경교육의 장으로 한 번쯤 둘러볼 만하다.
광명동굴의 입구는 산 중턱에 있기에 산길을 조금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가는 길은 다소 만만치 않았지만 말로만 듣던 광명동굴의 명성이 어느 정도인지 하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금방 입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동굴 말고도 라스코 전시관을 활용한 보물탐험, 카페 등 각종 부대시설이 풍부하기 때문에 하루 종일 둘러볼 수 있는 체류형 관광지를 꿈꾸는 듯했다. 동굴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마치 개미굴에 온 것처럼 끊임없는 갈래길이 가지처럼 뻗어 있었다. 그래도 일방통행길을 만들고, 갈림길마다 수많은 안내요원을 배치하여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