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기정으로 오르는 물질(말길)
차노휘
박수기정으로 올라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다. 돌멩이도 제법 많다. 예전에 중국으로 말 반출을 위해서 말들을 포구까지 몰아 이동했던 물질(말길)이다. 몽골(元) 제국은 제주를 직할령으로 삼아 100년을 통치했다.
제국의 14개 국립목장 중에 하나를 제주에 설치했다. 한라산 기슭에서 키운 말을 중국으로 수송했던 포구 중 하나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당케 포구'다. 당은 중국(唐)을 의미하고 '케'는 '작은 지역'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당케'는 중국과 교류하던 곳을 일컫는다. 원나라가 퇴각하면서 말 반출을 더 이상 하지 않았지만 물질은 해방 이후까지 사람들이 이용했다. 도로가 난 뒤로 가시덤불에 덮여 거의 50여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이 길을 올레길 탐사 팀이 복원시켰다. 사람들은 여전히 물질(말길)이라고 불렀다.
나 또한 700여 년 전의 말들이 올랐던 길을 따라 박수기정으로 향했다. 아래에서 봐도 멋진 풍경이지만 주상절리 위에서 보는 풍경은 더 할 나위 없는 곳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단순히 여행객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곳에서 생활을 해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박수기정 절벽이 이웃마을 화순으로 가는 장애 벽과 다름없었다.
예전에 대평리의 교통은 매우 불편하였다. 화순리를 가려면 지금의 도로를 이용하기에는 너무 멀었다. 이심전심 사람들은 좀 더 빠른 샛길을 찾기 위해서 100m가 넘는 주상절리로 눈을 돌렸다.
높지 않은 절벽 부분에 발을 간신히 디딜 수 있는 길을 냈다. 사람들이 다니는 소로였지만 늘 위태위태했다. 어느 날 기름장수 할머니가 그곳을 지나다가 추락해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좀 더 안전한 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송 씨라는 마을 석공에게 한 집 당 보리 다섯 되를 주기로 하고는 징으로 절벽을 쪼아서 턱을 만들게 했다. 요즘 말로 암벽 등반로를 개척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주도 해변에서 가장 험악한 트레킹 코스인 조슨다리가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