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손으로 모내기 하는 모습. 이젠 시골에서 누구도 손으로 모내기를 하지 않는다.
노일영
심지어 남편은 논밭을 갈고 김을 매는 경운 작업도 삽 하나로 해결했는데, 주민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도시 놈으로 놀리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나도 남편의 행동이 돈키호테처럼 무모하고 과하다고 생각했지만, 고생 좀 하다 보면 저러다 말겠지 싶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런 것들보다 문제는 우리가 농약과 비료 없이 농사를 지었는데도 아무도 그걸 믿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유기농 인증은 절차 때문에 시간이 꽤 걸리는 과정이라, 우리가 생산한 작물이 농약과 비료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유일한 증거는 오직 우리의 진술뿐이었다.
친한 친구에게 농약과 비료 없이 생산한 고춧가루라고 선물을 줬는데 그녀는 반신반의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농약 없이 고추를 키울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재배 면적 대비 생산량은 좀 적지만, 두둑(밭과 밭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언덕)의 높이를 많이 올려서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었다고 말해도 결국 믿지 않았다. 그러고는 선물이라고 했는데도 내 통장에 고춧가루 가격의 다섯 배가 넘는 돈을 송금했다. 돈을 다시 돌려보내면서 참으로 서글펐다.
내 인생에 획기적인 한 해
타인에게 밤과 두릅만 팔고 벼·고추·콩 같은 것들은 그냥 내가 먹을 정도만 농사짓자고 다짐했다. 그게 귀농 3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다. 두릅은 농약이나 비료 없이도 알아서 적당히 자라고, 밤은 함양군에서 1년에 한 번 항공 방제를 하고 있으니 내가 세운 기준과 적당히 타협한 셈이었다. 내 마음에 새긴 농사의 기준이란 농약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함양군에서 실시하는 항공 방제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나에게 면죄부를 준 꼴이다.
아무튼 2017년 귀농 3년 차부터 두릅과 밤농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그해는 그래도 경제적으로 그럭저럭 버틸 정도는 됐다. 매달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농사 외 수입도 있었기 때문이다. 두릅과 밤은 노동집약적인 가족농 혹은 소농의 작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노동력을 투입해서 농사가 끝난 뒤 결산을 해보면 거의 가족의 인건비만 남는다. 출하한 밤과 두릅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몸을 갈아 넣은 노동의 대가만 있는 수입·지출표를 보고 있노라면 허무함과 허탈함이 밀려온다.
2017년 농사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밤으로 육백만 원, 두릅으로 사백만 원, 합쳐서 대략 1000만 원이었다. 농사 외 수입이 없었다면 세 식구가 입에 풀칠도 할 수 없는 금액이라 할 수 있다(실제로 입에 풀칠만 하는 농가가 허다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귀농해서 농사를 몇 년 짓다가 포기하고 읍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며 출퇴근하는 주민들도 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