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말리기
이종명
나는 생강나무꽃을 따서 씻고 말려서 꽃차를 만든다. 생강나무는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라고도 하는데,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 알싸한 그 향기는 바로 생강나무 향이다. 봄에 생강나무꽃을 따서 꽃차를 만들라 치면 어느새 목련꽃도 봉오리가 올라오고, '어 목련꽃이 피려고 하네'라고 생각한 며칠 뒤면 하얗고 탐스런 목련꽃이 피어버린다.
목련 꽃차는 꽃이 피어버리면 말짱 '꽝'이라서 꽃이 피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목련꽃은 꽃이 피기 전에 꽃봉오리를 따서 껍질을 벗겨 꽃차를 만든다. 내가 장수에 살면서 얻는 수익 중에서 가장 먼저 용돈을 가져다주는 게 바로 생강나무 꽃차와 목련 꽃차이다.
주로 시차를 두고 피던 꽃들이 요즘은 그냥 한꺼번에 다 피어버리는 통에 일정이 마구 꼬이고 있다. 주위를 돌아보면 산수유, 생강나무, 목련, 진달래, 벚꽃까지 죄다 피었다. 심지어 살짝 해가 드는 반음지에 임하부인이라고 불리는 으름덩굴에도 꽃이 피었다.
귀농한 첫 해, 재작년에는 처음으로 차를 만들어보면서 방법을 익혔다. 그야말로 한 스무 송이 만들어서 나만 마시거나 찾아오는 지인들하고 한두 잔 나누어 마시다보니 그 양이 너무 적었다. 그래서 내년에는 제대로 많이 만들어 돈벌이도 해보리라고 맘을 먹었다.
그러나 지난해는 어~어~ 하다가 꽃피는 때를 놓치고, 또 비를 만나면서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또 가향을 한다고 더 말리다가 태우기도 했다. 다시 꽃을 따다가 만들려고 하니 이미 꽃이 만개해버려서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나는 주로 집 주위 600미터 고지의 산에서만 꽃을 구해왔기에 다른 곳에는 이미 꽃이 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꽃피는 전선에 따라서 움직여야 함을 알았다. 표고가 낮고 양지바른 곳과 지대가 높고 그늘진 곳의 차이가 한 달이 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제 장수에 피는 모든 꽃이 바로 내 것이라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서 수첩에 고도가 낮고 양지바른 어느 마을 뒷산에서 몇 월 며칠에 무슨 꽃이 피고, 가장 늦게 피는 꽃은 어느 마을 옆 OO라고 기록도 해 놓았다.
올해 2월 하순이 되면서 양지바른 곳에 산수유꽃이 피기 시작했다. 산수유꽃이 핀다는 것은 곧 산에는 생강나무꽃이 핀다는 것을 의미했다. 전주를 다녀오면서 보니 아파트 단지 해가 잘 드는 곳에는 목련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목련과 생강나무가 쌍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 옳거니, 드디어 일 년 내내 기다리던 때가 왔다.
나는 두근거리는 맘을 진정시키면서 우선 목련 꽃차를 만들 생각에 바구니와 장대 낫을 들고 산으로 향했다. 그런데 산에 도착해서 경악하고 말았다. 내가 2년 동안 애지중지(?) 보아왔던 어른 허리만한 목련나무 십여 그루가 다 베어지고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올해 여기서 꽃봉오리 50킬로그램 정도를 따서 긴물찻집에 납품할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시작부터 어긋났다. 아, 괜히 억울해졌다. 내 용돈 40만 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흐흑~) 긴물찻집에 전화해서 올해 나무가 다 베어져서 납품할 수 없다고 설명하고, 내가 직접 마시고 팔 소량의 꽃차만 만들기로 했다.
내가 살던 멧골의 뒷산에 가서 한바구니를 따와 그야말로 꽃봉오리와 사투가 시작되었다. 이름만으로 보면 꽃차 만들기가 낭만적이고 예쁜 꽃잎이랑 봄놀이하는 것 같지만, 이게 극한 노동이다. 목련꽃봉오리는 겉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니 나 있고 그 겉껍질을 벗기면 연노란 색의 꽃잎이 펴지기 전 상태로 단단하게 돌돌 말려있다. 꽃잎은 보통 아홉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