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말은 내가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젊을 때 가질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조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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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 했어?" 어느 평범한 월요일에 한 회사 선배가 물었다. 마침 기분 좋은 주말을 보내고 온 터라 "집에서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면서 컬러링 북을 색칠했는데 그 날따라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볕까지 좋아서 너무 좋더라고요"라고 해맑게 대답했다. 나보다 나이가 열두 살 정도 많았던 그 선배는 "너 언제까지 주말에 혼자 색칠 공부하는 게 재밌을 것 같니? 40살 넘어서도 재밌을까?"라며 내게 일침을 날렸다.
꽤 친하게 지내던 선배의 말은 내가 밖에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고, 젊을 때 가질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한 조언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선배의 말은 화살처럼 날아와 내 가슴에 제대로 명중했다. 잠자고 있던 불안감의 씨앗에 싹이 텄고, 그 후로 한동안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으로 괜히 바쁘고 행복하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주말이면 소개팅에 박차를 가했다. 소개팅이란 짝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성공률이 0%다. 이제 막 얼굴을 제대로 마주 보게 된 상대방과 짧은 만남 속에서, 서로 비슷한 정도의 호감과 신뢰를 느낀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체험하는 시간을 반복적으로 겪었다. 아무래도 내가 찾는 인연은 이렇게 긴급하게 구할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선배의 아주 따끔했던 말 때문에 진짜로 뭐라도 하다 보니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내 나름대로 현실과 나 사이의 타협점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올해 들어 '예전에 비해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는 생각을 한다.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거칠게 줄여서 말하자면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타입이다. 식사 메뉴를 고를 때 나를 본다면 결단력 있는 사람으로 오해할 만큼 '결정 장애'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 큰 결정은 될 수 있는 대로 피한다. 반드시 해야 한다면 비교적 예측가능하고 위험부담이 적은 쪽으로 선택하는 편이다.
이런 나에게 익숙하고 살기 좋은 군산을 떠나 전주로 이사 가겠다는 결정 역시 쉽지 않았다. 혼자 살 집을 구하는 일은 거의 고문에 가까웠다. 아파트 구입은 커녕 전세도 공포였기에 일단 월세를 구했다. 작은 임대 아파트지만 아파트라서 모든 가전 가구를 직접 사들여야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혼자 사는 동안 잠깐 쓰다가 버린다고 생각하면서 중고제품이나 중소기업의 저렴한 제품으로 고를지 아니면 오래 쓸 요량으로 브랜드 네임이 있는 비싼 제품을 고를지 결정하는 일은 지금 당장 내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져서 알아보기조차 싫었다. 덕분에 이사한 후 일주일 넘게 냉장고가 없어서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넣어두고, 빨래는 한쪽에 쌓아두고 사는 믿고 싶지 않은 사태가 벌어졌다.
더는 결정을 미룰 수 없었다. 몇 가지 가구를 제외한 모든 것들을 오래 쓸 각오로 값이 좀 나가는 제품들로 빠르게 구매해나갔다. 정신없이 혼자서 집을 구하고 이삿짐센터와 계약하고, 크고 작은 집안 살림들을 들이는 나를 지켜보면서 오히려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이고 어떤 선택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느 선택지든 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이 흘러 그 선택을 후회하게 되더라도 무언가를 선택해나가야 한다는 현실도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결정 당시의 내가 원하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스스로에 대한 존중과 자유로써 큰 의미가 있었다. 더불어 무언가를 선택함으로써 따라오는 단점이 아닌 '장점'과 '기회'에 집중하고 잘 즐길 줄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