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중범 경기도의회 의원
경기도의회 유튜브 채널
이 말을 들은 언론노조 관계자는 '내년 6월 송출은 (과거 경기방송) 조합원들에게 사형선고 같은 일'이라며 보다 빠른 설립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경기공영방송 논의를 조금이라도 접해본 이들은 이미 알고 있다. 방송국은 도지사 대권행보와 아무 연관성이 없는 일이라는 것을.
[제2의 TBS?] 경기공영방송은 상업광고가 가능한 종합편성 채널
일부 언론이 왜 '제2의 TBS'라고 하는지 살펴보니, TBS처럼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고, TBS처럼 '편파방송'을 할 가능성이 높아서란다. TBS를 편파방송으로 단정 짓는 근거도 동의할 수 없지만, 1년 반 뒤 만들어질지도 모르는 경기도 방송국이 편파방송을 할 것이라는 추측은 사실상 관심법에 가깝다.
지자체가 출자한다는 점만 비슷할 뿐 TBS와 경기공영방송은 출발부터 다르다. 먼저 상업광고다. TBS 라디오는 상업광고를 받지 못한다. 1990년 6월 개국할 때부터 그랬다. 방송통신위원회로(아래 방통위)부터 광고를 받지 않는 라디오 채널로 허가받았다. 앞으로도 어려워 보인다. 2019년 독립법인으로 전환하면서 상업광고를 허용해달라고 방통위에 건의했지만, 방통위의 답변은 여전히 'No'다. 다른 라디오 방송사들이 광고시장 축소를 우려해 반발한 거다.
실제로 6개 라디오 방송국이 TBS FM의 광고 허용을 반대한다는 의견서를 방통위에 제출하기도 했다. <뉴스공장> 청취율이 아무리 3년 연속 1등을 찍어도 라디오 상업광고를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서울시 예산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TBS만의 고민인 것이다.
이와 달리 경기공영방송은 상업광고를 받을 수 있다. 2020년 주파수를 자진 반납한 경기지역 민영라디오(경기방송)는 1997년 개국 첫날부터 상업광고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시절을 제외하고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기록해온 강소기업이었다. 물론 비어있는 FM 99.9 채널을 운영하게 될 새 사업자는 과거 경기방송이 누리던 '중소채널 연계판매' 특혜를 받지 못하겠지만,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만 만들면 얼마든지 일정 정도의 상업광고와 뉴미디어 수익을 통해 지자체 의존도를 줄여 재정적 독립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 역시 이런 모델로 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 조례에도 상업광고 관련 내용이 포함됐고, 2020년 12월에 나온 '타당성 연구보고서'에도 자체 수익 모델 개발을 통해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지자체 지원을 점진적으로 줄여간다는 의견이 명시됐다.
예산과 사업 규모도 다르다. 현재 TBS는 라디오 채널 2개와 케이블 TV 1개를 운영하는 미디어 그룹이다. 예산 규모는 한해 500억 원 규모로, 2020년엔 서울시가 357억 원을 지원했다. 반면 경기공영방송은 라디오채널(FM 99.9 Mhz) 한 개로 방송국 설립에 150억 원, 운영에 매년 약 100억 원 안팎의 예산규모가 점쳐진다. 경기공영방송이 미국의 공영라디오 NPR처럼 단지 라디오 송출에 그치지 않고, 보이는 라디오 유튜브 채널과 팟캐스트, 온라인 뉴스 정보 제공을 통해 영향력과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면, TBS보다 훨씬 저예산으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가성비 높은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편성의 범위도 다르다. TBS 라디오는 교통정보 전달을 주목적으로 하는 정보채널로 보도권한이 다른 채널에 비해 제한돼 있다. 그러나 경기도를 송출권역으로 하는 FM 99.9 주파수는 기본적으로 종합편성으로 보도, 예능, 교양을 다양하게 편성할 수 있다. 과거 경기방송도 그랬다. TBS는 정보방송이고, 경기공영방송은 종편인 셈이다. 그러나 경기도가 실제로 보도를 어떤 비율로 편성할지는 미지수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관영방송 논란 등 방송 공정성을 위해 보도국 대신 '지역국'을 운영하고, 기자인력 대폭 축소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근자감' 질문했다고 방송국 폐쇄?] 대표적인 가짜뉴스
한 매체는 2019년 1월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 때 벌어진 이른바 김예령 기자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 발언을 소환하기도 했다.
당시 경기방송 기자였던 김예령 국민의힘 대변인이 자신의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제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 자신감의 근거는 뭐냐'고 강하게 물어보면서 태도 논란이 불거졌는데, 이때 앙심을 품은 문재인 정부가 경기방송 문 닫게 하려고 방통위 재허가 심사를 편파적으로 하게 했고, 결국 방송국이 문을 닫자 기다렸다는 듯 경기도가 방송국 설립을 추진했다는, 한 편의 영화 같은 추론이다.
명백한 가짜뉴스에 기반한다. 2020년 4월 15일 총선을 앞두고 심재철 미래통합당 대표 등 야당 의원들은 '경기방송 자진폐업은 문재인 정권의 언론탄압에서 비롯됐다'는 '강제자진폐업설'을 주장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물론 심지어 야당 추천 방통위원까지 나서 '관련 의혹은 사실무근'임을 강조했고, 언론탄압설은 선거 이후 눈 녹듯 사라졌다. 기본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 경기방송은 3년에 한 번 받는 재허가 심사에서 최저점수에 미달하는 648점을 받았다(심사기준에 기자의 질문 논란 따위는 반영될 수 없는 구조). 미달 점수를 받은 경기방송에 대해 방통위 실무진은 1안으로 허가 취소를, 2안으로 강력한 개선명령이 담긴 조건부 재허가 중 택일할 것을 제안했다.
5명의 방통위원은 논쟁 끝에 2안을 택했다. 점수미달 자체만으로도 자격 박탈이 가능하지만, 경기지역 청취자들의 권리와 종사자들을 생각해 조건부 재허가를 택한 것이다. 야당 추천위원도 대통령 추천위원도 모두 방송을 살리는 쪽이었다. 정권의 언론탄압이라면 이때 허가를 취소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러나 방통위는 오히려 점수 미달 방송국을 살려줬다.
방송국 문을 닫은 것은 경기방송 이사들과 대주주들이다. 이들은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으로 민간사업자가 도저히 이행할 수 없는 무리한 요구 등을 해 결국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들이 도저히 이행할 수 없다고 밝힌 방통위의 요구 조건은 방통위의 승인받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한 임원을 경영에서 퇴출하고, 대표이사, 사외이사, 감사선임 등을 투명한 공모로 진행할 것 등 경영 투명성이었다. 소유경영 분리를 위해 일반 기업에서 기본적으로 수행하는 장치들이었다.
그러나 경기방송은 재허가 조건을 이행하는 대신 '주파수 반납'을 택한 뒤 방송국 부지와 건물을 활용해 임대사업가로 변신했다. 2019년 3월 30일 0시, 자정을 알려드린다는 멘트와 시보를 끝으로 23년 된 방송이 멈췄고, 전 직원이 정리해고됐다. IMF 외환위기 당시를 제외하고는 매년 흑자를 기록해오며 쟁의 한 번 없던 알토란 방송국이었다.
"직원 전체와 현준호 전무이사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현준호 전무를 선택할 것입니다." (경기방송 이사회 결정문, 2019.9.25)
이것이 경기방송 대주주들의 철학이었다. 방통위 표현처럼 실질적으로 경영을 지배해온 총괄본부장이 자신의 친일 역사왜곡 발언논란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사의를 표명했는데, 이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던 대표이사가 물러나면 물러나겠다던 본부장은 오히려 전무이사로 승진했으며, 제보자들은 해고됐다. 전 직원보다 전무이사 한 사람을 신뢰한다고 밝힌 이사회는 공고문을 통해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방송국 문을 닫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때가 2019년 9월 25일이었으니, 그들은 딱 6개월 만에 실행에 옮긴 셈이다.
친일 역사왜곡 발언에 항의하는 지자체들이 협찬을 중단하며 책임 있는 사과를 요구해도 그들은 '언론탄압'이라며 자신들의 길을 갔다. 방통위가 경영 투명성을 보장하라고 요구해도 그들은 '언론탄압'이자 '기업활동위축'이라며 전파권을 반납했다. 어떻게든 지역의 공공재인 방송을 건강하게 이어가려는 국민의 행정권이, 선출되지도 검증되지도 않은 민영방송권력에 의해 우롱 당한 사건이었다.
경기도민 57.1% "경기지역방송 설립, 도민들에 많은 도움 될 것"
경기방송 정파 이후 경기지역 시민사회가 새로운 공공라디오 건립운동을 시작했다. 2020년 4월 6일 경기시민사회단체체연대회의 등 시민단체와 현업자들은 경기도 의회 브리핑룸에서 '정파된 99.9 주파수를 경기지역 공공라디오로 만들자'고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4월 22일에는 70~80명의 참석자와 10여 개 언론사의 취재 열기 속에 '경기지역 방송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어,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영방송이 답'이라는 결론을 도출했다. 사유화된 방송으로는 공공성을 유지하기 힘들다는 이유였다.
이런 움직임을 통해 그동안 경기지역 교통방송설립을 타진해오던 경기도와 경기도 의회도 비어 있는 FM 99.9 주파수를 활용한 공영방송 설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2020년 12월 경기교통방송 설립에 관한 '타당성 연구보고서' 결과가 나오며 급물살을 탔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성인남녀 1천 명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33.3%가 경기도 관련 정보를 충분히 받지 못한다고 답했고, 57.1%가 경기도 지역방송이 도민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했으며, 60.3%는 경기 지역 전문 방송이 생기면 청취해볼 의향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이후 경기도와 경기도 의회는 교통방송 설립을 넘어 지역의 뉴스와 생활문화정보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공영라디오로의 설립 준비를 밟아왔고, 올해 4월 2일 의회에 발의된 '경기도 공영방송 설치 및 운영 조례안'은 21일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뒤 29일 본회의에서 107명 재석 중 98명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그러나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공영방송이 경기도에서 전파를 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관문을 넘어야 한다. 하나는 치열한 경쟁이 예상되는 '사업자 공모'를 통해 주파수를 확보하는 일이고, 또 하나는 관영방송이 아닌 진짜 공영방송이 되기 위해 필수조건인 '비영리 재단법인' 설립이다. 둘 다 만만치 않은 과제인 데다 시간도 많지 않다. 그러나 경기도와 의회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의회 운영위원회 속기록을 살펴보면 아시겠지만, 지속적으로 의원들이 제기했던 것이 (비영리) 재단설립을 통해 반드시 방송의 공영성과 독립성을 보장하자. 이렇게 해서 조례에 담게 됐습니다. 방송 독립성은 경기도 의회 운영위원들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이 조례 이후 재단설립과 관련된 조례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고 방송사업 추진 진행도 공모에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는 다 공개될 것입니다." (국중범 경기도 의원, 2021. 4. 26)
1383만 경기도민·마을미디어와 함께 커나갈 '나의 방송국'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