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씨의 아카데미상 수상 소식인 전해진 26일, 조영남씨 발언을 기사화한 매체들.
네이버 뉴스 캡처
윤여정씨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지난 28일은 윤여정씨에 관한 기사가 그야말로 쏟아지는 날이었다. 웬만한 기사는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이때 연예매체도 아닌, 무려 '통신사'인 <뉴스1>이 먼저 '조영남 카드'를 꺼내든다. <뉴스1> 기자가 조영남씨와 통화한 내용을 담아 '조영남 "윤여정 수상 너무 축하…나처럼 바람 피운 사람에게 최고의 한방"'이라는 기사를 낸 것이다.
조영남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들이 보기에 내가 (윤여정씨를) 언급하는 게 안 좋다고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해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면서 "나는 그냥 축하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논란이 된 발언을 한다. "이 일이 바람 피우는 남자들에 대한 최고의 멋진 한 방, 복수 아니겠나. 바람 피운 당사자인 나는 앞으로 더 조심해야지."
이어 <중앙일보>는 '조영남 "윤여정의 통쾌한 복수…딴 남자 안사귄 것 고맙다"'라는 기사를 통해 조영남씨의 발언을 추가로 전한다.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조영남씨는 "그 친구가 지금 잘 나가고 있는데 내가 군더더기 이야기 할 필요 없다"면서도 "(윤여정이) 다른 남자 안 사귄 것에 대해 한없이 고맙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사들이 나간 뒤에 조영남씨에 대해 무수한 비난이 쏟아졌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록 밴드 '언니네이발관' 출신 이석원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조영남씨 비판 글 역시 무수히 많은 매체들이 인용해 보도했다. 요즘 말로 '안물안궁'인, 사회적으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내용을 통신사와 주요매체가 기사화하고,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언론이 다시 기사화하는 상황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조영남의 '발언권' 키워준 곳
지금 조영남씨의 말에 '떠나간 가부장으로서의 권위'를 부여하고, 조영남씨가 '무례한 말'을 할 것을 알고서도 그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바로 방송사와 언론 매체다.
2011년 9월, KBS2 <빅브라더스>라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온 조영남씨가 게스트로 나온 태연씨를 껴안으면서 기습뽀뽀를 한 적이 있다. 이때 KBS2의 자막은 '오지 않은 미래와 겪지 않은 과거의 만남'이었다. 2013년 12월에는 MBC <섹션TV 연예통신>에서는 화실에 찾아간 서유리씨에게 기습포옹을 하고, 친분을 통해 작품을 싸게 구매할 수 있냐는 질문에 "내 여자친구나 애인이 되면 가능하다"라고 발언했다. 이렇듯 방송사들은 조영남씨의 성추행 장면을 오히려 '훈훈한 분위기'처럼 묘사해왔다. 그밖에도 조영남씨의 수많은 망언들과 성희롱은 방송에서 '영남씨는 못 말려' 수준에서 언급되었고, 이는 조영남씨가 숱한 논란에도 당당하게 방송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면죄부는 주로 남성에게 부여된다. 물의를 일으킨 남자연예인에게는 불현듯 '일이 끊겨서 걱정된다'라는 동정 여론이 일어난다. 남성은 가족을 먹여살려야 하는, '생계부양자'라는 관점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행실이나 사적 일탈에 대해서도 여성에 비해 비교적 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다.
이는 1990년대까지 성적 보호법익이 '정조'로 규정되어있던 과거의 역사는 물론이고, 여전히 남성이 주류를 차지하는 수사기관, 법원, 언론 등이 여성의 행실만을 '피해자다움' 등으로 재단해왔던 현실과 연관되어있다. '여성에겐 엄격하되, 남성에겐 온정적인' 문화는 은폐되어있을 뿐, 사실 이렇게 곳곳에서 증명되고 있다.
'조영남 끼얹기'라는 이 황당한 사건은 조영남씨 개인의 부덕함만을 탓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조영남씨 같은 남성 중년 연예인의 무례한 말과 행동을 '자유분방함'이라거나 '늙어도 철없는' 등으로 묘사하며, 마냥 미화하고 감싸주던 방송사와 언론매체들이 지금의 조영남씨를 만든 것이다.
'바람 핀 사실'을 토대로 자조적인 유머를 하는 것도, 윤여정씨의 처지에 자신을 빗대 자기연민에 빠질 수 있는것도, 그런 목소리들이 감히 지상파 방송과 주요 매체 지면에 나올 수 있는 것도, 조영남씨와 그를 둘러싼 '남성 권력'을 증명하는 일이다. 조영남씨 개인에 대한 비난을 넘어 누가, 어떻게, 조영남씨를 계속 '크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구조를 만드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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