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2일, 설악산 대청봉에서의 박그림 대표 알몸시위 모습.
박그림
"김종술 기자를 처음 봤을 때는 '한두 번 정도 오고 말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매일 오더라고요. 가까이 있어도 마음을 내지 않으면 이렇게는 못하죠. 요즘은 '금강 요정'(김종술 기자의 별칭)이 찾아오는 아침이 기다려집니다. 하-하-. 그런데 '금강 요정'이라기보다는 투쟁적인 별명으로 '금강 전사'로 부르면 어떨까 싶어요."
박 대표의 표정은 밝았다. 어투도 확신에 차 있었다.
시민기자이자 13년차 환경운동가인 김 기자는 30년 경력의 '대선배'에 대해 "대청봉에서 피켓을 들고 알몸 시위를 하는가 하면, 오체투지 등을 해온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구닥다리 운동방식'이라고 이야기할지는 모르겠지만, 여전히 온몸을 던져 활동하는 방식은 통한다"면서 "제가 그동안 금강에서 활동했던 것은 새 발의 피"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011년 1월 2일이었다. 그날 설악산 대청봉의 체감 온도는 영하 35~40도였단다. 박 대표는 대청봉에 올라가 알몸으로 시위를 했고, 다음날 언론들은 앞 다퉈 둥근 피켓을 든 알몸 시위 사진과 함께 이 소식을 타전했다.
"그 뒤에 만난 사람들이 제게 한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박 대표는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기자에게 물었다. 이어 박 대표는 "팬티는 입었는가였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는 "대청봉 밑 대피소에서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놓이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를 저의 행위로서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궁리하다가 알몸 시위를 하자고 결심했다"면서 "설악산이 이렇게 헐벗은 몸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물론 팬티까지 벗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옷을 벗고 나서가 문제였다.
"그런데 아무도 없는 거예요. 누군가는 사진 찍어줘야 하는데, 저 혼자였죠. 그래서 기다렸어요. 오래지 않아서 두 사람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분들의 도움으로 알몸 시위를 세상에 알릴 수 있었죠."
그 뒤에도 박 대표의 싸움은 계속됐다. 오색에서 대청봉, 비선대에서 대청봉, 한계령에서 대청봉... 설악산 대청봉으로 나 있는 등산길 전 구간을 기어서 올라갔다. 오체투지(五體投地)는 두 무릎을 땅에 꿇고, 두 팔을 땅에 댄 다음 머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는 불교 수행법이다.
"설악산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는 건가? 화가 치밀어 올라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제 온몸을 땅에 대지 않고서는... 이마를 설악산 어머니의 등에 갖다 대면서 느꼈던 감정은 제 가슴에 진동으로 전해졌습니다, 어머니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전이됐죠. 목숨을 바쳐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박 대표는 케이블카 반대를 외치며 오색에서 청와대까지 걸었다. 강원도청에서 443일간 천막농성을 했다. 원주지방환경청 앞에서 364일 동안 천막도 없이 '비박농성'을 했다. 광화문, 환경부 서울사무소에서도 50일, KT 본사 앞에서도 농성했다.
"길거리에서 보낸 수많은 시간 속에서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 수많은 농성을 통해 이룬 작은 성공의 기억들이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에 꽉 차 있죠."
오랜 노숙에도 그의 표정이 밝은 이유는 단단함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악산에 대한 간절함과 사랑, 그리고 승리에 대한 확신이 오래된 육신을 단단한 바위처럼 만든 것 같았다.
[일문일답] "황금알 거위 배 가르고, 고려청자에 금 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