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고 죽지 않게.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에 새겨진 글.
김용균재단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위험의 외주화, 2018년 12월 10일, 컨베이어 벨트, 청년 비정규직, 24세, 비정규직, 2인 1조, 휴대폰 불빛, 절대 반지, 산재, 정규직화, 시민대책위, 특조위, 김용균재단...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산업재해(이하 산재) 사고를 당한 청년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은 지금도 여러 키워드로 검색되고, 매해 24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 있다는 설명에 등장한다.
사고 발생 후 이미 2년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김용균 산재사고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재판이 아직 진행 중이고, 당정 협의로 발표한 개선책은 지금도 완료되지 않았다. 그나마 2019년 2월 5일 합의 이후 건립하기로 했던 추모조형물이 2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야 세워지게 되었다.
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을 세우기 위한 노력은 2년 동안 지속되었다. 회사 측과 협의도 하고 논의도 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현장의 일부 정규직 노조는 하청노동자의 산재사고를 추모하는 조형물 건립을 반대한다 하고, 그것이 회사에는 핑계이자 이유가 되었다. 협의는 맴돌았다.
결국 약속이행을 요구하는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피케팅과 행동이 서울과 태안에서 이어졌다. 국정감사를 위해 활동하던 산자부 일부 의원들도 상황을 알고 사안이 해결되도록 현장을 찾고 움직였다. 이런 목소리와 행동이 이어지면서 2020년 11월 10일, 한국서부발전은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건립을 위한 추진계획을 마련하고 이행하기로 확약했다.
2021년 4월 28일, 세계 산재사망노동자 추모의 날에 청년 비정규직 고 김용균 추모조형물을 태안화력발전소 정문 앞에 세운다. 태안화력발전소 앞에 세우는 고 김용균 노동자의 추모조형물이 발전소를 넘어 더 많은 이들에게 들려지는 목소리가 되길 바란다.
기억함으로 죽음을 막아내길
고 김용균 노동자 추모조형물 하나 세우는데도 2년이 넘게 걸렸다. 합의서가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산재에 대한 공감이나 합의가 작다는 생각이 든다. 산재를 아직도 감추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하청노동자의 산재는 원청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추모조형물이나 추모 공간을 누가 어떤 이유로 마련하는가는 중요하다. 안타까운 죽음이라는 이유만으로 추모조형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추모조형물을 세우려는 것은 산업재해라는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바꾸고 싶고,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하는 지점이 어떤 것인지 생각할 시간과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야기하면서 '3시간마다 죽는다는 1명의 노동자'라는 숫자가 아니라, 꿈이 있고 숨결이 있었던 사람을 떠올려주기 바라기 때문이다.
추모조형물이 세워지는 곳은 추모의 공간이자, 역사의 공간이며, 학습의 공간이 될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다짐하고 머리를 숙이는 기업의 모습은 언제나 반복된다. 그나마 머리를 숙이는 건 기업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 높을 때뿐이다.
그런데 같은 기업에서 다시 몇 개월 뒤에, 몇 년 뒤에 같은 재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같은 재해가 며칠 뒤 다른 일터에서 생기기도 한다. 일하다가 다치고 아프고 죽는 일이 너무 일상이 되고 있다. 일터의 죽음이 일상이어서 책임 묻기도 처벌도 느슨하다.
누군가의 죽음을 알리는 것은 아프고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다른 이의 희생을 줄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죽음으로 내몰린 이유를 이야기하면서 산재를 없애나갈 수 있다.
"일터의 죽음이 없어야 합니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왜 일터에서 죽음이 발생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원갑 사북항쟁동지회 명예회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광업주 명의로 채탄 과정에서 안전대책을 소홀히 하는 바람에 많은 광부들이 희생된 사실을 인정하는 비석을 세워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죽은 자를 추모하고 산자를 위해 투쟁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