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대 열사가 백골단 폭력에 쓰러졌던 명지대 교문 앞 집회 모습.
강경대열사추모사업회
당시 집회는 낮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명지대에서는 학원자주화투쟁이 계속되고 있었으며 4월 24일에는 명지대 총학생회장이 상명여대 학원자주화투쟁집회에 참석하여 지지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서울 서부경찰서에 연행되었다. 이에 명지대생들은 총학생회장 구출투쟁에 나서 4월 26일 낮 12시 서부경찰서 앞에서 항의 연좌투쟁을 벌였으나 전원 폭력적으로 연행되었다.
이에 분노한 명지대생들은 오후 3시에 학내집회를 갖고 경찰서 진격투쟁을 벌였다. 당시 대학에는 여전히 사복경찰이 들어와 학생들의 동태를 감시하고 있었고, 시위가 발생하면 백골단(사복체포조)이 학내까지 진입하여 학생들을 때리고 끌어가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날 오후 3시 40분경부터 명지대 운동장에서 학생 400여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당시 학생들의 구호는 "총학생회장 석방하라" "학원자주 완전승리와 노태우 정권 퇴진" "해체 민자당, 퇴진 노태우"였다. 경찰은 쇠파이프와 직격최루탄, 페퍼포그로 중무장한 전경과 백골단을 투입해 강제해산과 체포작전에 나섰다.
백골단을 보자 학생들은 담을 넘어 몸을 급히 피했고, 시위대 선두와 본대를 연결해주는 연락책이었던 경대도 쫓아오는 백골단들을 발견하고 담을 넘어 피하려고 학교 담장에 올라섰다. 이때 서울시 경찰국 소속 제4기동대 94중대 백골단 5명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경대를 끌어내려 담장 벽에 세워놓고 그중 한 명이 경대를 붙잡고 나머지 네 명은 115센티미터의 쇠파이프와 130센티미터 나무 몽둥이, 진압봉 등으로 경대의 가슴과 어깨를 마구 내리쳤다. 또 각목으로 왼쪽 머리를 가격하고 발로 배를 계속 차면서 경대의 머리를 잡은 채 진압봉으로 머리와 팔, 상체를 무차별적으로 가격했다.
경대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다. 학생들이 경대가 맞고 있는 것을 보고 달려오자, 백골단은 경대를 2미터 정도 끌고 가다 길 위에 내팽개치고 도망쳤다. 경대는 이미 온몸이 축 늘어져 손가락 하나 가누지 못했다. 경대는 병원으로 옮기던 중 오후 5시 30분경 피워보지도 못한 짧은 19년의 생애를 마감했다. 사인은 외부가격에 의한 심낭 내 출혈이었다. 그날 새벽 부모님께 남긴 짧은 쪽지가 마지막 유언이 된 채 경대는 이제는 오지 못할 세상으로 갔다.
"내 아들 죽인 놈 얼굴 한 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