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착취 도시, 서울>
글항아리
그렇다면 이러한 '희망'조차 찾기 힘든 사람들의 삶은 어떨까. <착취도시, 서울>은 이러한 질문에 적나라한 답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른바 '쪽방촌'을 비롯해, 서울의 열악한 주거 현실을 짚고, '빈곤 비즈니스'의 이면을 파헤쳤다. 저자인 <한국일보> 이혜미 기자는 지난 2019년 '지옥고 아래 쪽방촌', '대학가 신쪽방촌'이라는 2부작 기획보도 내용을 바탕으로 <착취도시, 서울>을 엮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쪽방촌'에 사는 사람은, 대학가에 사는 학생들의 상황과도 또 다르다. 첫째, 주거 환경에서부터 차이가 있다. 쪽방을 명확히 정의 내린 자료는 없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이렇다. '방을 여러 개의 작은 크기로 나누어서 한두 사람이 들어갈 크기로 만들어놓는 방. 보통 3제곱미터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3제곱미터는 싱글 퀸 사이즈 침대 하나 사이즈 정도 된다. 그 안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쪽방은 보통 화장실이 없고 방 안에서 취사가 가능하지 않다. 쪽방 주민은 건물에 있는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을 사용한다. 경우에 따라 다르긴 한데 심지어 1층을 두 개의 층으로 나뉜 방도 있다. 온수와 난방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아래 쪽방'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둘째, 쪽방 주민의 월소득은 현저히 낮다. 2019년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쪽방 거주민 1949명 대상 월소득 100만 원 미만은 82.7%였고 주 소득원은 정부보조 수급비(70.3%)였다. 일하지 못하는 이유로는 건강상의 이유(72.8%)에 응답한 이가 가장 많았고 일자리가 없다는 이유(8.0%)가 뒤를 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등은 서울 기준 1인 가구 주거급여로 23만3000원 안에서 월세를 지원받는다. 즉, 쪽방 주민 복지를 위해 지급되는 국민의 혈세는 쪽방 소유주에게 흘러간다.
쪽방의 평균 평당 임대료 18만 2550원.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인 3만 9400원의 4배를 훌쩍 뛰어넘는 임대료다. - <착취 도시, 서울> p.104
<착취도시, 서울>의 전문가들은 쪽방의 주거 기능 자체는 긍정했다. 김선미 서울 성북주거복지센터장은 쪽방이 "노숙을 막아줄 '방파제' 역할을 한다"라고 말하며 실제로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쪽방과 비슷한 주거자원인 SRO(single room occupancy)가 대거 철거되자 홈리스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쪽방과 고시원이 노숙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그물'이자,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발판'으로 기능하는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제는 적합한 주거 환경을 제공하지 않는 쪽방을 이용한 약탈적 임대 행위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빈곤 비즈니스'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이다.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행태를 말한다. - p. 58
약탈하는 이는 누구인가?
쪽방의 계약은 보통 구두로 이뤄진다. '방 있음'이라고 적힌 간판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해 관리인과 만나 그 자리에서 계약한다. 부동산 계약서도 없고 보증금도 없다. 계약서가 있을 리 없다. 최저주거기준을 만족하는 '주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대료는 일세로 납부하기도 하고 월세로 납부하기도 한다
쪽방 건물 한 채당 매달 287만 5168원(평균값을 통한 추정)을 현금으로 받으면서도 카드 결제나 현금 공제가 되지 않아, 수익은 드러나지 않는 '그림자 현금' 형태로 집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흐른다. - p.103
빈곤 비즈니스를 이용해 착취하는 소유주만 있는 건 아니다. 오래된 자료이긴 하지만 2002년 한국도시연구소 <쪽방연구>에는 쪽방 주인 할머니 박씨의 인터뷰가 나온다.
박씨는 야박하게 사람을 내쫓지 못한다고 했다. 방세가 밀리면 바로 내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자신은 몇 개월씩 방세를 내지 못하는 사람을 그냥 지내게 해 준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쪽방촌 소유주가 쪽방촌 지역에 사는 경우에 해당하고 그중에서도 매우 일부일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