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세대만 해도 작은 갈색 약병에 나오는 모발 염색제를 많이 썼다. 가루형 염색약을 물에 개어서 사용한다. 집에서 혼자 하는 셀프 염색은 염색약이 골고루 묻지도 않고, 잘 빠지지 않아 염색약이 침구 여기저기에 묻는다.
박진희
도대체 머릿속에 무슨 일이 생겼지? 염색을 자주 하는 것도 아닌데, 최근에 잘 시간만 되면 머릿속이 근질근질하다. 가려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검지 손톱으로 정수리 일대를 여러 차례 긁게 된다.
하얗게 세는 머리칼이 날로 느나 싶어 내심 걱정이다. 그러다 문득 어릴 적 할머니께서 가끔 "와서 머리 좀 긁어라" 하시던 기억이 떠올랐다. 할머니께서 베개에 머리를 뉘면 나는 양손 엄지손톱을 마주하여 할머니 두피를 힘줘가며 쪼아댔다. 흡사 옷이나 이불에 붙은 이나 벼룩을 잡을 때처럼. 그렇게 해 드리면 할머니께서는 엄청나게 좋아하셨다.
"이게 그렇게 시원하세요?" 여쭈면, "너도 늙어봐라. 이다음에 알게 될 거다" 알쏭달쏭한 대답을 하셨다.
항상 까맣게 머리를 물들여 정갈하게 쪽지시던 할머니가 그리하셨던 것처럼 어머니도 미용실에 가지 않고 꼭 집에서 머리 염색을 하신다. 미용실에서 염색하면 금방 색이 빠진다는 게 이유였다. 또한 시중에는 모발 손상이 적은 좋은 모발 염색제가 나와 있는데도 여전히 약국에서 파는 값싼 염색약으로만 머리를 물들인다. 한 병으로 여러 번 염색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수십 년을 그 염색약만 써온 탓인지는 모르겠는데, 머리 정수리가 휑해져 볼썽사납다.
"인제 그만 백발로 다니시면 어때요?"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들도 관리만 잘하면 멋스럽다고 종용해도 소용없다. 그건 머리숱 많은 사람들 얘기라며 들은 척도 안 하신다. 백발로 다니는 건 싫지만, 탈모는 은근 걱정이신지 샴푸도 예사 것은 안 쓰고, 두피에 좋다는 마사지 오일도 잊지 않고 챙겨 바르신다.
그러다 한 날은 "김수미 두건 좀 알아봐라" 부탁하시길래 꽃무늬 들어간 것으로 사 드리려 했더니, "너무 비싸다. 관둬라" 만류하신다. 값도 값 이려니와 앞치마와 함께 쓸 때만 어울리는 걸 알아채신 모양이다.
그렇지 않아도 조만간 모자 하나를 장만하려던 참이다. 칠순에도 백발만큼은 남들한테 보여주기 싫은 울 엄마께 어울릴 만한 꽃모자도 골라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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