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과 하늘이 맞닿아 있는 김제평야
김준정
낯선 기분을 느낀 데는 근거가 있었다.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심지를 벗어나면 첩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를 떠나 전라도 김제평야를 만났을 때 나는 이럴 수도 있나,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거대한 불도저로 땅 위에 솟은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밀어버린 것 같은 장면에 세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했다. 나는 그런 여백이 마음에 들었고 뭔가 새로 시작되는 기분을 느꼈다.
김재완 작가는 직장을 그만두고 식당을 할까 하는 생각에 "손가락 김밥", 묵은지 돼지고기쌈을 집에서 연습했다. 자영업은 힘들어도 내 일이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돌아오니 억울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12년 자영업을 해온 나도 과거 어느 시기에는 그런 확신과 기대에 가득 찼던 때가 있었다.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는 김재완 작가와 소도시에서 자영업을 했던 나는 입장이 다르다. 그럼에도 책에 나온 고충이 이해가 되는 건 먹고살아야 하지만, 먹고살고만 싶지 않은 마음이 같아서일지 모른다.
그동안 했던 일들을 싹 밀어버리고 나오긴 했는데... 막막했다. 첩첩이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해방인지 낙오인지 헷갈렸다. 매달 빠져나가는 아파트 대출금이 이토록 부담이 될 줄은 몰랐고, 돈이 안 되는 글을 쓰면서 돈 걱정을 하게 될 줄은... 돈으로 세계가 뒤바뀌는 경험을 할 줄은... 몰랐다.
걱정, 불안, 스트레스의 삼종세트는 뭘 선택하느냐와 상관없이 따라오는 기본 옵션이라는 걸 알았고,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할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알았다. 조금 쉽게 가고 싶은 마음이 들수록 생각이 많아지고 내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평생 꿈에 그리던 44 사이즈는 되지 못하고 나이만 44를 찍은 어른답게 (제발) 하기 싫은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글도 쓰자. 인생에 단일 품목이란 없다.
나 아직 안 죽었다 - 낀낀세대 헌정 에세이
김재완 (지은이),
한빛비즈,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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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봐서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학원밥 18년에 폐업한 뒤로 매일 나물을 무치고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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