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빌레라의 한 장면. 너무?딱?맞는 옷을 입은 듯한 배역에의 몰입부터가 마음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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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드라마를 처음 본 날, 나는 박인환씨가 연기하는 '심덕출 할아버지'에 푹 빠져 버렸다. 아니, 칠순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사랑스럽고 (죄송한 말이지만) 이토록 귀여우셔도 되냐고! 굳이 연기 경력을 들추지 않더라도 너무 딱 맞는 옷을 입은 듯한 배역에의 몰입부터가 마음에 와 닿았다.
급기야 4회까지 보고 나서 나는 박인환씨를 모델로 원작자가 심덕출이란 인물을 창조하지 않았을까 하는, 나름의 합리적 의구심마저 들었다. 그만큼 화면 속의 심덕출은 생생히 살아 있으면서도 캐릭터의 본질을 쉬 훼손하지 않은 정돈된 모습의 인물이었다.
이런 열연 덕에 '사제간의 동반성장' 같은 드라마의 목적과 주제는 이미 몇 회 만에 달성된 듯 보였다. 적어도 내게는. 배우들의 열연과 드라마의 주제의식 이런 것을 구구절절 얘기하고픈 것은 아니다. 이 드라마 <나빌레라>가 유독 내게 특별히 다가온 이유는 오로지 덕출 할아버지가 가슴으로 내뱉는 한 마디 말 때문이었다.
"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날아오르고 싶어서..."
아... 날아오르고 싶다는 열망, 그 간절했던 소망을 오래 잊고 살았기 때문이다. 내게도 그런 끓어오르는 열정이 있었는데, 30년 전쯤에는 말이다. 꿈이란 모름지기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색이나 형태를 달리할 수도 있는 것이고, 때론 품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수도 있음이다... 는 개뿔! 꿈은 제법 단단한 형상을 지닌 채로 내 주위를 맴돌면서, 이제나 저제나 나의 재간택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데 왜 나는 짐짓 외면했던 것일까.
서머싯 모옴의 <달과 6펜스>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가 불현듯 떠오른다. 그토록 원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찰스, 가족도 주변 인물도 사회의 평판 따위도 중요하지 않게 된 그 어느 날, 홀연히 회사를 그만둬 버렸지 않은가.
나도 회사 생활 중 바로 그 찰스가 되고 싶었던 적이 기억나는 것만 해도 열 번 이상은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결심은 아직 대학 등록금이 필요한 동생의 상황 앞에서, 가족의 생활비를 당분간 책임져야 하는 '소녀 가장'이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번번이 무너져 버렸다.
새벽에 일찍 눈을 떠 아침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채 프리랜서로 일하던 방송국에 그날 원고를 전달하고 늦기 전에 서둘러 회사로 출근하는 일상을 4년 이상 이어갔었다. 요즘 같으면 절대 일어날 수 없던 일들이었는데, 그때는 어떻게 그게 가능했었는지 모르겠다.
매일이 피곤했고, 저녁쯤엔 늘상 내일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가난한 집안의 중간 자리로 태어나 이런 고초를 겪으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얽매인 월급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그저 회한만 가득할 뿐이었으니.
대학을 졸업할 무렵 담당 교수님은 내게 대학원 진학을 권했다. 뒤늦게 흥미를 갖게 된 전공 공부를 어떻게든 이어가고 싶은 맘이 내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범하고도 실현 가능했던 꿈조차 그 당시 우리 가족에겐 사치로 여겨졌었던 거 같다. 혼자의 몸으로 삼남매를 대학까지 진학시킨 엄마의 수고로움은 나의 꿈을 덮기에 충분했으니까.
공부를 계속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싶은 마음, 틈틈이 시를 써 시인으로 등단하는 그림은 회색의 현실로 덧칠되더니, 금융기관의 새내기 사원으로 창구에 앉는 순간 철문이 굳게 닫힌 것처럼 어떤 시공간에 감금돼 버린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삶의 꼬리를 물고 길게 길게 이어져왔고,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면 아득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손톱만한 기대조차 들지 않을 만큼.
내 꿈을 향해 나도 날아오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