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시국선언이 전국 각계각층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009년 6월 18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정진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오른쪽에서 두번째)과 전교조 회원들이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변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촉구하고 있다.
유성호
항소심 재판부인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제1형사부는 판결문에서 '두 가지 판례'를 사건 관련 법리로 내세웠다. 전교조 시국선언을 다룬 2012년 4월 19일 대법원 '선고 2010도6388' 판결과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등에 대한 위헌 여부를 다룬 2014년 8월 28일 헌법재판소 '선고 2011헌바32' 헌법소원 심판이다.
2012년 대법원판결은 시국선언이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고 공익에 반하는 행위임을 뒷받침하는 주요 논거로 사용됐다. 2014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연명으로 이루어진 시국선언 방식을 문제 삼는 근거로 활용됐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부터 교사 시국선언에 대한 기소와 유죄 결정이 이어졌다. 2009년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을 다룬 2012년 4월 19일 대법원판결은 이후 열린 시국선언 재판에서 유죄 결정의 주요 근거로 인용됐다. 법원은 이번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재판에서도 핵심적인 법적 근거로 끌어왔다.
"2009년 당시에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로 약칭함)의 시국선언이 있었고, 이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등의 위반 혐의에 기한 검찰의 기소 조치가 행해졌으며, 전국의 법원들에서 유‧무죄의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2012년 4월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관련 사건에 대해 유죄의 원심을 확정하면서 상고를 기각하는 판결이 있었다." - 이종수, 2014년 6월, '공무원의 집단적 의사표현행위에 대한 형벌권 행사의 가부', <헌법학 연구> 제20권 제2호, 2~3쪽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집단행위 금지'와 관련된 2012년 대법원판결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다.
"공무원인 교원이 집단적으로 행한 의사표현행위가 국가공무원법이나 공직선거법 등 개별 법률에서 공무원에 대하여 금지하는 특정의 정치적 활동에 해당하는 경우나,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 또는 반대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등 정치적 편향성 또는 당파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행위 등과 같이 공무원인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는 경우에, 그 행위는 공무원인 교원의 본분을 벗어나 공익에 반하는 행위로서 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기강을 저해하거나 공무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어서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한 것이라 할 것이므로,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에서 금지하는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 대법원, 2012년 4월 19일, 선고 2010도6388 판결문
대법원은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이 금지하는 '공무 외 집단행위'는 '공익에 반하는 행위'와 '직무 전념 의무를 해태'하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정치적 활동'과 '정치적 중립을 침해할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불러일으킨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정치적 중립'을 침해하는 직접적 위험을 초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나 반대 의사'를 직접 표현하여 '정치적 편향성 또는 당파성을 명백히 드러내는 행위'라고 밝혔다. 아울러 '정치적 중립' 침해 여부나 정도는 구체적인 사안에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어떠한 행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에 이르렀다고 볼 것인지는 일률적으로 정할 수 없고, 헌법에 의하여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되는 공무원 및 교원 지위의 특수성과 아울러, 구체적인 사안에서 당해 행위의 동기 또는 목적, 시기와 경위,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배경, 행위 내용과 방식, 특정 정치 세력과의 연계 여부 등 당해 행위와 관련된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 대법원, 2012년 4월 19일, 선고 2010도6388 판결문
복잡한 법리 서술과 무관하게 법원 결론은 이번 사건 1심 판결과 같은 극히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한결같았다. 2012년 4월 19일 대법원판결을 비롯해 올해 4월 1일 세월호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항소심 법원 결정에 이르기까지 교사의 학교 밖 집단행위는 '위법하다'는 것이 법원의 주된 판단이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문 안에는 제한적이나마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며 '정치적 중립 침해' 여부는 여러 사정을 고려한 종합적 판단해야 한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교사 시국선언이 국가공무원법 제66조 제1항 집단행위 금지 조항 위반이라는 결론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의 유죄 판결 이유
항소심 재판부가 밝힌 유죄 판결 이유를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크게 두 가지다. 대통령 퇴진 주장과 호소, 교사 신분 공개와 학생들에 미친 영향이다.
첫째,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항소심 재판부는 대통령 퇴진 주장이 정치적 중립을 침해했다고 보았다. 대통령은 소속 정당이 있으므로 특정 정당을 반대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논리다.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은 아무리 대통령이 잘못해도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영혼 없는 교사'만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궤변이다. 또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직후의 상황이 대통령 퇴진 요구를 받아들일 정도는 아니라는 자의적 판단도 덧붙였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임과 아울러 일반적으로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정치 활동이 허용되는 정치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중략)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운동의 선언 및 국민들에 대하여 대통령 퇴진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행위는 공무원인 교원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 사건 각 교사선언 당시 세월호 참사 및 그 수습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문책과 제도개선 등을 요구하는 여론이 높기는 하였으나,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할 피고인들이 그와 관련하여 더 나아가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까지도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상황은 아니었다."
- 2021년 4월 1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항소심, 2020노162 판결문
둘째, 항소심 재판부는 '연명'으로 교사 신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 자체가 '집단적·정치적 의사표현'으로 위법하다고 보았다. "모방성과 수용성이 왕성한 미성년자인 학생들"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커서 학교 밖에서 이루어진 시국선언도 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집단적 의사표시 방법인 '연명 '으로 '교사'임 을 밝히면서 공개된 인터넷 사이트인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대통령 퇴진 운동에 나설 것임을 선언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제3차 교사선언은 해당 피고인들이 각자 비용을 분담하여 신문사와 광고 계약을 체결한 후 역시 '연명'으로 '교사'임 을 밝히면서 국민들에게 대통령 퇴진 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모두 교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집단적·정치적 의사표현행위를 한 것."
- 2021년 4월 1일,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항소심, 2020노162 판결문
학생들은 무조건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판단력이 부족한 존재라는 전제 자체가 황당하다. 더불어 '미성숙한 존재'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를 받아들이더라도 시국선언 참여가 잘못이라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다. 재판부의 주장대로라면, 학생들은 잘못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교사들을 그대로 따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가 교육과정 목표인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 함양'은 불가능하다.
위헌적인 국가공무원법 바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