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4월 KEB 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의 채용 점수 조작 및 성비 내정으로 여성지원자를 탈락시키는 금융권 채용 성차별이 드러났다. 이에 채용성차별철폐공동행동에서는 채용성차별을 시행한 기업에 항의를 담은 기자회견을 조직해 진행하였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남녀고용평등법은 명시적인 채용상 성차별을 규제하고 있다. 일정 규모가 있는 기업이 공식적인 채용 절차를 진행할 때 '남성 우대', '용모 단정'이라는 구인 광고를 보기는 이제 쉽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아르바이트나 계약직 등 비공식적 채용이 진행되는 영역에서는 법 위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과거에 두드러졌던 성별분리 채용 모집과 같은 낡은 방식의 성차별이 사라지면서 채용 상 성차별을 피부로 느끼는 것이 더 어려울 때도 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수면 위로 드러난 일련의 성차별 채용 비리 사건은 채용 성차별이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한금융, KB국민은행 등 채용 점수 조작 사건은 채용성차별이 만연해있다는 현실을 보여주었다.
2018년 7월 국회에서 열린 금융권 성차별 채용 비리를 통해 본 남녀고용차별 개선과제 토론회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이 소개됐다. 이들은 "신입 행원 가운데 여자가 너무 많으면 곤란해 남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올려준 것으로 조작이 아니라 조정이다", "출산과 육아휴직 등 여성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전체 인력운용 차원에서 채용 비율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 여직원 텔러 뽑을 때 남자 안 뽑는 건 성차별 아니냐"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노골적인 점수 조작이 아니더라도 면접 과정에서 여성 지원자는 말로만 듣던 차별의 벽을 경험하게 된다. 모성보호 제도가 강화되면서 채용상 성차별의 주된 요소로 등장한 것은 여성에게 전가된 가족 돌봄 때문이다.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성차별을 뿌리 뽑기 위해 2018년부터 온라인 익명신고센터를 운영한 이후 2018년 9월~12월까지 100건이 넘는 성차별 사례들이 접수됐다. 익명신고 센터에 접수된 차별의 유형에는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여성 채용을 기피한 사례가 많았고 면접에 응시한 여성 지원자에게 '결혼과 임신 계획'을 묻는 사례가 여전히 많다.
고용주들은 일 잘할 수 있는 사람, 조직에 맞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고자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라고 항변한다. 이런 고용주들의 행동은 '통계적 차별' 이론은 이렇게 설명한다. 고용주는 실제로 직무를 수행하기 이전까지는 지원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기 때문에 지원자의 실제 능력을 대신할 수 있는 선험적 지식이나 정보로 그 지원자의 생산성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지원자가 얼마나 성실하게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알기란 불가능하므로 고용주는 학력, 지역, 성이나 인종과 같이 생산성이나 이직성향과 일정한 상관관계를 갖는 집단의 특성을 이용해 지원자 개인의 성과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평균적으로' 여성 지원자의 생산성이 낮고 아이를 낳으면 육아휴직을 쓰거나 그만둘 것이라고 믿으면, 그 여성 지원자가 아무리 평균적인 남성보다 우수해도 채용에서 불이익을 겪게 된다.
노동시장에서 성평등은 오랫동안 남성 노동자를 표준, 이상적 규범으로 삼아왔다. 언제라도 회사의 부름이 있으면 일하러 달려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불문하고 매여 있는 노동자, 자녀나 부모를 돌볼 책임을 방기하고 하루 8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있는 노동자를 '이상적 노동자(ideal worker)'로 보고 있다. 이 이상적 노동자상에 견주면 임신, 출산해야 하는 생물학적 조건에 처하여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필요로 하는 여성은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상에서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맞벌이 가구가 점차 보편적인 가족 형태가 되면서 '이상적 노동자' 기준에 부합할 수 있는 남성이나 여성 노동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가정은 뒷전이고 조직에 헌신할 준비가 된 '평균'적인 남성상은 과거만큼 공고한가.
채용성차별이 여성 생애주기에 미치는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