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고 23년 만에 다시 시작한 미술. 박명옥 작가는 “그림을 그림으로 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최육상
그림만 그리던 대학 4년 생활이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고 곧바로 아이를 낳았다. 집안일과 육아에 전념하느라 그림을 손에서 뗐다.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고 살아왔는데 뒤돌아보니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허무하다는 생각을 하던 어느 여행길, 새로울 것 없는 '말린 옥수수 한 더미'가 눈에 꽂혔다. 너무 아름다웠다. 습관처럼 사진에 담았다. 말린 옥수수 한 더미가, 그 사진 한 장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을까? 대학생 때 그 열정으로 돌아가 보자고 다시 그림을 시작했다. 23년 만에 잡은 붓으로 그 옥수수 더미를 그렸다. 액자를 끼우려고 그림을 화방에 맡겼다.
뜻밖에도 화방 주인이 그림을 공모전에 내 보라고 추천했다. 전혀 생각을 못 했던 일이라 머뭇거리다 마지못해 작품을 접수했다. 덜컥,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에서 입선을 했다. 지난 2010년의 일이다.
2년이 지난 뒤, 다른 그림을 또 화방 주인의 추천으로 국전에 출품했다. 이번엔 한 단계 더 높은 우수상을 수상했다. 우수상을 받은 그림은 전에 입선했던 작품에서 질적인 변화를 꾀했다. '거품'이 더해졌다.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박명옥 작가 이야기다.
"방구석 작가, 세상물정 모르고 그림만 그린다"
지난 4월 1일부터 오는 5월 2일까지, 전북 순창 옥천골미술관에서 박명옥 작가의 기획초대전이 열린다. 지난 2일 오후 안면이 있던 김정훈 옥천골미술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 초대전 작가를 만날 수 있느냐고. 작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무작정 미술관을 찾았다.
박 작가는 갑작스런 취재 제안에 "언론과 대화는 처음"이라며 "미리 연락하고 왔으면 자리를 피했을 텐데"라고 진심으로 당황했다. 그녀는 "살면서 언론 인터뷰도 처음이고, 말 주변도 없는데…"라면서 "저는 방구석 작가로, 정말 세상 물정 모르고 그림만 그리고 있다"고 첫 마디를 뗐다.
"사회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라요. 주부 일을 하다 보니까 (그림 그리는 걸) 멈출 때가 많아요."
1981년 미대에 입학한 박 작가는 "대학 4년은 제 인생에서 진짜 놀지도 않고 그림만 그리던, 제일 행복한 때였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할 무렵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결혼 후 어느 날 그림을 그리려고 '이젤(그림판을 올려놓는 틀)'을 폈는데 남편이 결벽증 환자처럼 '이걸 왜 안 치우느냐?'고 한마디 해요. 그때 저는 자존심 하나밖에 없었는데 그다음부터 작업이 안 되더라고요."
아들 낳고 23년이 지나 다시 찾은 미술
그녀는 1985년 결혼해 1986년에 아들을 낳았다. 미술을 다시 찾은 건 그로부터 23년이 흐른 2009년 전후다.
"아이 군대 가고 나서야 홍대 (미술)교육원을 찾아간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데생부터, 기초부터 다시 미술을 시작하자 그랬죠(웃음). 근데 첫 번째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눈에 제가 미술 전공한 걸 알아보셨어요. 다음 수업부터는 바로 수채화를 하라고 말씀하셔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하게 됐죠."
박 작가가 '국전'에서 상을 받게 된 이야기는 극적이었다. 여행 중에 '말린 옥수수 더미'가 너무 아름다워서 무심코 찍어온 사진 한 장이 그녀의 삶을 가정주부에서 작가로 완전히 바꿔놓았다.
"옥수수에 생명을 불어넣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무 생각 없이 무조건 100호짜리(162.2×130.3센티미터)에 크게 그렸어요. 옥수수 그림은 집에서 작업한 거라 당시 교육원 교수님도 모르시는 작품인데, 액자 만드시는 화방 아저씨가 공모전에 내 보라고 추천해 주신 게 국전(2010년)에서 덜컥 입선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