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빌레라시간과 장소 구애없이 춤을 추는 열 살
김혜진
지난 3월 초, 아이가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활액낭염이었다. 왼쪽 무릎이 눈에 띄게 부어올랐고 아이가 걸을 때 왼쪽으로 힘을 주지 못했다. 그 나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잘 생기지 않는 염증이라 했다.
원인은 단순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그런 것이라고. 어린 나이라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권하지는 않는 대신 6주를 쉬면 나을 수 있겠다고 의사는 말했다. 아이는 그 즉시 모든 레슨과 연습을 중단해야만 했다.
활액낭염은 발레를 하는 무용수들에게 드물지 않게 찾아오는 병명이었고 반복되는 부상으로 고통 받는 무용수들이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드라마 <나빌레라>의 채록이 역시 만성으로 보이는 무릎 통증을 가지고 있다. 평생 부상 없이 발레를 하는 무용수들은 드물다는 것과 반복되는 부상과 고질적인 통증으로 무용수 생활을 일찍 마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조금 초조해졌다.
아이가 발레를 쉬는 4주, 내가 알게 된 것
아이가 발레를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이 4주를 넘어가고 있다. 아이의 열 살 인생에 춤을 추지 않는 모습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보지 않고 살았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낯선 시간이다. 그러나 아이는 열 살 아이답게 다른 즐거움을 찾아서 지내고 있다. 레고 박스를 헐었고 넷플릭스를 보느라 꼼짝 않고 몇 시간씩 앉아 있기도 하고 눈이 풀릴 때까지 로블록스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나는 점점 더 초조해지고 있다. 몸이 굳어버릴텐데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5월에 대회가 있는데 과연 참가할 수 있을까. 살이 찌는 것은 아닐까. 다시는 발레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지. 속으로만 삭히지 않고 무시로 입 밖으로 꺼내는 일도 다반사다. 스트레칭은 안 할 거니? 대회 나갈 안무를 까먹은 건 아니지? 너 지금 뭐하니? 내가 거칠게 몰아붙일 때마다 아이는 어처구니 없어 하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쉬어야 낫지!"
나는 공부를 잘하는 인생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소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적으로 아이가 원하는 것들을 존중하며 키운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가 부상을 입고 초조해 하는 나를 직면하자 발레를 해서 성공 시키겠다는 내 안의 욕망을 본 것이다.
나는 아이가 발레리나로서 크게 성공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것이 아이의 행복이라 믿었기에 나의 욕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그의 인생을 이미 결정 지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이가 어쩌면 발레를 다시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상상만 했을 뿐인데도 사실 크게 상심하고 말았다. 여태 그 아이의 발레를 위해 애쓰고 노력한 것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머릿속에서 계산을 했던 것이다. 나는 엄마로서 아이를 도와준 것이 아니라 아이를 발레리나로 키우기 위해 작전을 짜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고백하건대 나는 덕출의 그랑제테를 상상했던 것처럼 내 아이가 그 동작을 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그려 보았다. 아이의 키가 자라고 기술이 늘면 그렇게 날아오를 것이라 상상하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디자인하여 아이를 구속한 다른 그림에 불과한 것을 왜 이제 알았을까.
덕출을 향한 나의 응원은 순수했다. 가장 원했던 것이라 하더라도 실제로 '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결심은 하지만 '하기'는 쉽지 않다. 인생에서 앞을 가로막는 장벽이란 언제나 다른 양태로 서 있는 법이니까. 칠순의 어르신은 나보다 그것을 더 잘 알 것이다.
덕출이 노인이기에, 따라서 그가 발레리노가 되지 못할 게 분명하니까 그의 시도만으로도 높이 샀던 것일까.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의 응원은 뜨거운 것을 간직하고 살아온 당신의 마음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것을 잃지 않고 살아준 자세를 향한 존경이었다. 밖에서 보았을 땐 험하고 고단한 인생이었겠으나 알맹이는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보듬은 칠십년이라 생각되어 넘치게 아름다웠다.
딸 아이에게 발레는 자신의 열 살 인생을 자신답게 꾸려가는 도구였을 것이다. 아이는 그 안에서 성취감을 느꼈고 행복을 만끽했다. 열심히 해왔고 또 앞으로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러나 부상은 또 찾아올지 모르고 아이는 끝내 발레리나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수도 없이 아이가 날아오르는 순간을 상상하고 꿈꿀테지만 아이의 '나빌레라'는 꼭 그랑제테가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가 발레를 하지 못하고 쉬는 이 시간, 나는 덕출의 '나빌레라'를 보며 딸 아이를 향해 건네는 응원의 마음을 되돌린다. 나의 응원은 가장 순수한 알맹이어야 할 것이다. 높게 뛰어오르는 발레리나를 향한 환호가 아니라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너를 존중하며 너 답게 살기를 바라는 응원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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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 좋아하는 딸 지지해주는, 보기 드문 엄마라고 자부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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