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통식 개최 직전의 남해대교다리가 만들어지고, 개통식을 치르기 직전인 1973년 6월 22일 남해대교 모습이다. 개통식을 치르기 위해 다리 끝에 세운 임식 가설물에 '남해대교'라 쓴 글자가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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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 현수교는 1973년 5월 춘천에 만들어진 등선교(登仙橋)로, 철거되어 사라지고 없다. 두 번째 현수교가 남해대교다. 1968년 5월 10일 착공하여 1973년 6월 20일 완공된다. 총길이 660m(128 + 404 + 128)다.
남해군과 하동군에 각각 위치하는 '노량리'를 서로 연결하는 다리다. 준공 당시 아시아 최대 현수교였다. 남해안을 대표하는 랜드 마크(Land mark)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모두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양과 색깔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와 유사하다. 이웃한 광양만엔 우리나라 최대길이 이순신대교가 있다. 주 경간 1,545m로, 이는 이순신 장군 탄신년도를 상징한다. 두 다리가 위치한 곳은 정유재란 최후 격전지다. 바로 '순천 예교성(曳橋城) 전투와 노량(관음포)해전'이다.
정유재란 최후의 전투
정유년 9월, 명량에서 왜군은 참패를 당한다. 이들은 전술을 바꿔 순천에서부터 울산까지 왜성을 쌓아 둔취한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쌓은 순천 왜성은 철옹성이다. 5층 천수각과 각진 내·외성을 몇 겹으로 둘렀다. 성안 왜군은 1만 3천이다. 배는 500척이고, 군량은 1년을 버틸 만하다. 탄약과 총포가 부지기수다.
조선수군은 1598년 2월 고금도로 통제영을 옮긴다. 고니시를 잡기 위해서다. 조명연합군은 7월 사로병진(四路竝進) 작전을 세운다. 울산 가토 기요마사를 공격할 동로군(東路軍), 사천 시마즈 요시히로를 공격할 중로군(中路軍), 순천으로 진군하는 서로군(西路軍)과 진린이 이끄는 수로군(水路軍)이다. 그 사이 이순신 장군이 절이도(折爾島)에서 큰 전과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