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를 데쳐 국간장으로 무친 나물
김정희
아버지가 손수 심었던 머위
잎이 거칠어지기 전에 해두는 일이 있다. 적당히 성장했을 때 잎과 줄기를 데쳐 말리는데 머위 줄기는 두꺼워 말리는 일이 번거롭다. 이때 식품 건조기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한겨울에 말려둔 머위를 꺼내 물에 불렸다가 마른 머위 나물을 하면 또한 별미다. 말려 두었던 머위로 머위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한다는데, 아직 머위 차까지는 도전하지 않았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꿈틀거리는 여름, 머위도 마찬가지다. 작은 우산만큼 커 버린 머위 잎은 이제 먹지 않는다. 줄기만 먹는다. 머위 대 먹는 시기가 오면 여름이다.
머위는 더위에 약하다. 한여름 땡볕에 축 늘어져 죽은 듯 보인다. 아침나절에 따 놓은 줄기의 껍질을 벗기는데 처음엔 멋모르고 벗겼다가 손이 새카맣게 되는 줄도 몰랐다. 살짝 데쳐서 벗기면 손도 그렇고 껍질도 잘 벗겨진다.
머위는 머위 탕으로 정점을 찍는다. 멸치와 건새우, 말린 표고버섯으로 국물을 낸 육수에 머위 대와 찧은 마늘, 불린 쌀가루와 들깻가루를 넉넉하게 넣고 끓이다가 붉은 고추와 대파로 고명 올리고, 참기름 한 방울 넣어 완성한 머위 탕은 특히 아버지가 좋아하신 음식이었다.
우리 세 자매가 그 쓴맛을 사철 즐겨 먹게 되고, 해마다 잊지 않고 연례행사처럼 봄마다 머위를 따러 시골집을 드나드는 덴 이유가 있다.
한 십여 년 전 아버지가 밭에 머위를 심어 아침마다 농산물 공판장에 낸 적이 있다. 그때 우리는 머위를 몰랐다. 가끔 장에서나 보았던 나물 정도였다. 아버지는 머위 뿌리를 밭에 심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겨울엔 비닐하우스를 지어서 관리했다. 우리가 겨울에 먹는 머위는 이렇게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 머위들이었다.
평일에는 돕지 못했고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머위 순을 따 포장까지 해서 공판장에 냈다. 시세에 따라 달랐으나 이른 봄 수요가 늘 때는 제법 가격이 나갔다. 아버지는 몇 년인가 그렇게 머위를 가꾸고 생산하고 수입을 창출하며 경제활동을 하셨다. 힘에 부쳐 더 많은 양의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까지 머위는 우리 곁에 있었다. 아버지로 인하여 머위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머위 요리법을 검색하며 실컷 머위에 빠져 살았다.
아버지의 손을 떠난 머위는 자라지 않았다. 저절로 자생하는 머위하고 달랐다. 관리하지 않으니 모두 죽었고 따로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심었나 싶은 머위들이 집 주변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 세 자매는 해마다 봄이면 머위 순을 기다린다. 이제는 안 계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듯 양지바른 언덕에 앉아 머위 순을 따며 아버지를 떠올리기도 하고, 슬며시 눈물도 비친다.
머위는 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다. 그 쓴맛을 기억하며 사람들은 머위를 먹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