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생방송이 주는 긴장감 속에서 살아온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의 '김씨 아재' 이정대씨.
경북매일 자료사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란 이야기일 터. 여기 강산이 두 번은 변할 세월에 가까운 17년 동안 꾸준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복잡한 퇴근길 라디오 애청자들의 친구로 오랜 세월 함께 한 포항MBC '라디오 열린 세상'에서 '김씨 아재' 코너를 맡아 30대부터 50대가 된 지금까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어온 이정대(56)씨.
2004년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설 때부터 지금까지 깨끗하게 손을 씻고 대본을 받아드는 그는 항상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잊지 않는 방송인으로 살고자 애써 왔다.
긴장과 진땀의 연속이라 할 수 있는 생방송과 함께 살아온 6200여 일. 형님과 친구의 장례 기간 중에도 스튜디오에 들어가야 했던 때를 이씨는 또렷이 기억한다.
입에 착착 감기는 구수한 사투리로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쉽게 풀어내 청취자들의 가슴에 때로는 기쁘고 때론 서글픈 기억을 남기는 '김씨 아재' 이정대씨를 3월 마지막 주말에 만났다. 아래는 그날 오간 이야기를 정리한 것.
철강회사 해직 후 연극배우의 길로...
- 학생 시절부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에 관심이 있었나.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는 선배들을 위해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리고, 오락회도 가끔 열었다.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내성적인 아이는 아니었고, 활달한 성격이었던 건 분명하다."
- 방송인들은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1학년 시절까지 반장을 했다. 하지만, 내가 특출난 리더십이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시골 학교였으니 활동적인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시킨 것이라 보면 될 듯하다.
예를 들면 '우리 반에선 누가 웅변대회에 나갈래'라고 선생님이 물으면 모두가 우물쭈물 하는 게 보기 싫었다. 그래서 잘하건 못하건 먼저 손을 들고 나서는 편이었다. 너무 나서도 좋을 게 없는 게 인생인데.(웃음) 고등학생 땐 악대부에 들어가 트럼펫을 불었다. 지금은 주목받는 성악가가 된 우주호 씨와 친구였는데, 시내 번화가에서 불우이웃돕기를 하며 우주호가 가곡을 부르고, 내가 품바타령을 하던 기억이 난다."
- 라디오 출연 이전엔 연극배우를 했다던데.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단체가 진행하는 행사 등을 도우며 지냈다. 1989년 철강회사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가 해고됐다. 이후 아는 선배들의 소개로 1994년 연극을 시작했다. 지금도 배우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니 벌써 배우 생활이 27년째다."
- 연극배우 시절의 에피소드는.
"2008년 겪은 일종의 무용담 같은 것인데... '극단 은하'에서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란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비중 있는 조연을 맡았다. 공연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 선배 생일파티에서 돌아오다 넘어져 머리를 다쳤다. 연출가가 나서서 공연의 일시 중단을 알려야했던 작지 않은 부상이었다. 일주일쯤 지나서 다시 공연이 시작됐을 때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무대에 올랐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고도 심각했던 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