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억만 지사 증손주 우용준 광복회 금천구 지회장
김종훈
1962년생인 우용준 지회장은 중국 연변에서 태어났다. 초중고를 모두 조선족 학교에서 나온 뒤 연변대학을 거쳐 공무원이 됐다. 중국에서 공무원으로 생활했지만 우 지회장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독립운동을 한 할아버지 우억만 지사 때문이다.
"할아버지 우억만 지사는 경북 영덕에서 유명한 지주였습니다. 하루 종일 걸어도 자기 땅을 다 밟지 못할 정도로 큰 부자였어요. 그런데 나이 사십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형제들과 함께 군중을 동원해 경찰서를 습격하고 만세운동을 했습니다. 이 일로 옥고를 치렀죠. 이후 일제의 감시가 너무 심해져 만주로 이주했습니다. 그리곤 이름을 바꿔가며 독립운동을 하다 1942년 눈을 감았습니다. 남은 자식들은 조국에 돌아오지 못했고요. 계속 돌아오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죠. 할아버지가 고향을 떠난 지 70여 년이 된 지난 2003년에야 제가 유해를 모시고 돌아왔습니다."
우 지회장은 우억만 지사를 대전현충원에 모신 뒤 2005년 자신 역시 특별귀화 형태로 가족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그리곤 서울시 금천구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금천구가 서울에서 집값이 가장 쌌던 것'이 주된 이유가 됐다. 그러나 힘겹게 시작한 한국생활은 기대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할 수 있는 게 막노동뿐이었습니다. 중국 경력은 하나도 인정받지 못했고요. 말투에서 연변사투리가 있다 보니 어딜가도 낮춰보더라고요. 대놓고 차별하고.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너희 나라로 꺼져라'라고 하더라고요. '내 조국이 한국인데, 할아버지가 모든 가산 털어 독립운동한 나라인데, 꺼지라니...' 억울했죠. 생활에 치여 살다 2015년 광복회 회원이 되고 나서야 할아버지와 조국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2019년 우 지회장은 서울시 금천구 내에 거주하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결합해 광복회 금천구지회를 결성했다. 그리고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지역 내 친일잔재 및 항일유적에 대한 전수조사를 진행할 계획을 세웠다. 동네 공원에 국가공인 친일파 서정주의 시비가 자리한 것이 결정적 이유가 됐다.
"금천구에 '은행나무로'라는 유명한 길이 있어요. 수백 년 된 은행나무 세 그루가 있어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길 가운데 친일파 서정주의 '금천예찬'이라는 시비가 있더라고요. 이건 정말 아니다 싶었습니다. '당장 없애야 한다'라는 생각과 함께 '금천에 친일잔재가 이것뿐일까'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제대로 찾아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우 지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 내 항일유적을 찾기 위한 준비도 병행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 시흥군에 위치했던 시흥공립보통학교(현 시흥초등학교) 학생 120여 명은 동맹휴학과 만세시위를 전개한 역사가 있어요. 학생 시위가 바탕이 돼 시흥군 내 3.1운동은 4월 초까지 이어졌죠. 하지만 현재 관련 내용은 시흥초등학교를 비롯해 금천구 어디에서도 남아있지를 않아요. 흔한 안내판조차 없습니다."
2020년 말 우 지회장이 금천구의회에 "일제잔재 시설 및 지명, 문화유산 등에 대한 전수조사를 거쳐 목록화를 이루고 이와 관련된 기록관리 및 책자발간을 진행한다"라고 적힌 사업계획서를 제출한 이유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소속 B의원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을 비롯해 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반대해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솔직히 말하면 부끄럽다. 아마도 이 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인식이 부족했고, 평소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이 적어서 이런 결정이 나온 것 같다. 다시 한번 뜻을 모아 사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 전북, 광주, 제주 등 친일 전수조사 자체 시행"